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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그것이 알고 싶다' 장항 수심원의 슬픈 비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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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 '그것이 알고 싶다' 장항 수심원의 슬픈 비밀에 부쳐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6.06.19 13: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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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사각지대와 사회·국가 의무에 대한 단상 '인간의 조건'은?

[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몇몇 가족이 동의했다며 수용시설에 강제로 맡기고, 위탁받은 이들은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인권을 유린하고, 가족은 더 이상 일원으로 복귀하는 것을 바라지 않고, 사회는 차가운 편견으로 이웃에서 내치고, 국가는 가족간 일이라는 이유로 나 몰라라 하고….

우연히 이런 얘기를 전해 듣는다면 아마도 저개발 후진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해외토픽 쯤으로 여기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일이 우리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라면 우리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18일 밤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다시, 인간의 조건을 묻다-장항 수심원의 슬픈 비밀’ 편은 세계 11위 경제대국, IT와 한류를 선도하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모습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인권사각지대의 단면을 여실히 보여줘 충격을 줬다.

많은 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분노를 넘어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 그리고 착잡한 심정을 느꼈을 것이다. 필자도 마찬가지였다.

▲ 18일 방송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년 전에 종료된 것으로 알았던 '장항 수심원' 사건이 원생들에게는 여전히 끝나지 않은 비극이라는 사실을 밝혀 충격을 안겨 줬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처]

이날 방송은 충청도 남단에 위치한 작은 섬 유부도에 있었던 정신질환자 수용시설 ‘장항 수심원’이 폐쇄된 지 19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 수용시설에서 풀려났던 원생들의 그후 삶을 추적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장항 수심원의 참혹한 인권유린 실태를 네 차례에 걸쳐 고발했고, 마침내 그 실체가 밝혀진 1997년 보건복지부는 해당 시설을 폐쇄했다. 당시 원생들은 모두 자유의 몸이 돼 섬을 떠났고, 수심원 원장을 비롯한 몇몇 관계자는 법의 심판을 받았다.

“그후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 이같은 비극적인 일이 해소될 때 우리는 동화 속 결말처럼 해피엔딩을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수심원 원생들은 꿈에 그리던 가족의 품에 돌아가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추적 조사한 ‘수심원 원생들의 그후’는 기대와는 너무나 달랐다. 406명의 수심원 원생 명부 중 주소가 기록되어 있는 75명을 파악한 결과, 사망한 원생이 16명,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원생이 27명이었다.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거나 악몽에 시달리다 자살한 원생, 가족이 포기각서를 쓰고 외면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전히 다른 요양시설에서 보내는 원생 등 대부분은 여전히 비극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수심원 때에 비해 요양시설의 환경은 나아졌지만 가족과 사회적 편견, 국가적 외면의 결과 이들에게 행복한 자유와 가족의 품은 요원했던 것이다.

1997년 수심원 폐쇄 직전에 독방에 갇혔다가 구조되면서 “꼭 구해 달라”고 제작진에게 말했던 김 씨는 평생 수심원에서의 고통을 안고 살다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수심원에서 탈출했던 한 원생은 원장의 강요로 자신이 살기 위해 제3의 원생을 죽여야 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며 속죄의 눈물과 함께 시신의 위치를 찾고 있었다. 제작진의 취재로 당시 수심원에서 사라진 원생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누군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해도 공소시효가 지나 모든 사건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하지만 장항 수심원 사건은 현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공소시효 없는 해결과제’를 제기했다.

지금도 여전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강제 입원 조치의 법적 보완 작업과 이들에 대한 근본적인 치유 문제, 그리고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의 해소와 사회 복귀의 원활한 추진, 인권유린을 막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 개입 등의 과제를 던져 줬다.

인간은 누구나 신체의 자유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지만 일부 정신질환자에게는 그같은 천부적인 권리가 단지 구호로 그치고 있는 것이다. 환자에 대한 의료적 행위의 목적은 ‘치료’는 물론 그들이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건강한 삶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치유’의 범주, 즉 삶의 질적인 면까지 포함돼야 한다.

정신질환자의 비자발적 입원은 '인신구속'이라는 견지에서 악용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일부의 경우라고는 하지만 환자 자신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입원이 이뤄짐으로써, 정신질환자의 자유가 제한되거나 극단적인 경우 자유가 원천적으로 박탈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보호의무자에 의한 동의로 이뤄질 수 있도록 한 정신보건법상 강제입원 규정은 환자의 치료와 치유라는 순수한 목적을 떠나, 보호의무자의 사적인 이익에 의해 악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또 정신과 전문의의 결정 역시 현 상황에서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최선의 치유방식을 고려하는 데는 미흡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형법적으로 감금죄로 해석될 수 있는 인신구속이 소수의 자의적 의견에 의해 입원치료라는 명목으로 이뤄진다면 어떤 경우라도 인권의 보호 측면에서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는 것이다.

▲ '장항 수심원' 사건을 잉태한 원천적인 배경에는 정신질환자 강제입원 규정의 폐해가 깔려 있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사회적·국가적 공동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화면 캡처]

정신보건법상 악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조항은 제24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1항이다. 여기에는 “정신의료기관등의 장은 정신질환자의 보호의무자 2인의 동의(보호의무자가 1인인 경우에는 1인의 동의로 한다)가 있고 정신건강의학과전문의가 입원등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 한하여 당해 정신질환자를 입원등을 시킬 수 있으며”라고 규정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보호의무자의 객관성과 진정성을 일관되게 담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가가 정신질환자의 인권 제한을 개인에게 위임한 형국이다.

1948년 12월 10일 파리에서 개최된 제3차 국제연합 총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세계인권선언’에는 세상의 모든 인간과 국가가 달성해야 할 인권 존중의 기준을 명시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우며, 누구에게나 동등한 존엄성과 권리가 있다.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양심을 지니고 있으며, 형제애의 정신에 입각해서 서로 간에 행동해야 한다”(제1조) “모든 사람에게는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제3조) “어느 누구도 고문을 당하거나, 잔혹하고 비인도적이거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처우 또는 처벌을 받아서는 안된다.”(제5조) “모든 사람에게는 법에 앞서 어느 곳에서나 자연인으로서 인정받을 권리가 있다.”(제6조) “모든 사람에게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사회 보장을 요구할 권리가 있으며, 국가적 노력과 국제적 협력을 통해, 또한 각국의 조직과 자원에 따라 자신의 존엄성과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에 필수불가결한 경제적이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권리들을 실현할 자격이 있다.”(제22조) 등을 선언하고 있다.

‘사회나 문화에 속박되지 아니한,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자연인(自然人)’이라고 한다. 자연인은 법률에서는 법이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는 자격을 인정하는 자연적 생활체로서의 인간을 뜻하며, 근대법 이후로는 모든 인간이 출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 완전한 권리 능력을 평등하게 인정받는 존재를 의미한다고 한다. 살아 있는 자연인의 권리능력은 어떤 경우에도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것은 인정되지 않는다.

인간이 타고날 때부터 가지는 천부의 권리로서의 ‘천부인권(天賦人權)’은 국제연합(UN) 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은 물론 우리나라 헌법에도 명시되어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에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굳이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정신보건법에도 이같은 취지가 잘 명시되어 있다.

제1조에는 “이 법은 정신질환의 예방과 정신질환자의 의료 및 사회복귀에 관하여 필요한 사항을 규정함으로써 국민의 정신건강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의료적인 치료는 물론 사회복귀가 궁극적인 목적임을 분명히 하고 있고, 제2조(기본이념)에는 ‘모든 정신질환자는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받는다(1항)’, ‘모든 정신질환자는 최적의 치료와 보호를 받을 권리를 보장받는다(2항)’, ‘모든 정신질환자는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대우를 받지 아니한다(3항)’ ‘입원치료가 필요한 정신질환자에 대하여는 항상 자발적 입원이 권장되어야 한다(5항)’ 등이 명시되어 있다.

문제가 있다면 기본으로 돌아가 생각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정신질환자의 치료와 치유, 사회복귀 과정도 인간의 기본 권리인 ‘인권’의 존중과 준수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해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가와 국회도 직접 나서야 한다.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는 단 한 명의 권리라고 해도 무시당해서는 안된다. 인권 문제를 개인의 자의적인 해석에 맡긴다면, 사회나 국가가 국민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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