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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논점] 이승환-이병헌 연예인은 '최순실 게이트'에 일침, 한데 박태환-김연아 체육인은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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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논점] 이승환-이병헌 연예인은 '최순실 게이트'에 일침, 한데 박태환-김연아 체육인은 왜?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12.01 09: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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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계 특유의 보수적 문화, 관 주도 시스템 원인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너무 민감한 상황이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구기 종목 레전드 스타 A는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전횡을 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는 기자의 질문을 듣더니 말끝을 흐렸다. “곤란하다면 한국 스포츠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해줘도 괜찮다”며 바꿔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다음에 하도록 하지요.”

▲ 박태환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눈밖에 나 리우 올림픽 출전이 막힐 뻔 했다. [사진=스포츠Q DB]

가수 이승환은 자신의 건물 드림팩토리에 '박근혜는 하야하라' 현수막을 내걸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서는 ‘덩크슛’의 가사 ‘야발라바히기야’를 ‘하야하라 박근혜’로 바꾸어 불렀다. 영화 ‘내부자들’로 청룡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 이병헌은 “현실이 ‘내부자들’을 이겼다”며 “모두가 한마음이 돼 촛불을 들고 있는 장면을 봤다. 건강한 대한민국이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의미심장한 소감을 남겼다.

비단 이승환과 이병헌뿐이랴?

정우성과 윤종신, 유아인, 이준, 김동완 등 수많은 연예인은 촛불집회에 참여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를 초래한 박근혜 정부에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한데 왜 스포츠스타는 입을 다물고 있을까. 김종 전 차관의 각종 이권 개입,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비리, 장시호의 동계스포츠영재센터 장악 등 체육계 곳곳이 비리로 얼룩졌는데도 목소리를 내는 스포츠스타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전무한 실정이다.

도대체 연예스타와 스포츠스타는 어떤 사회문화적 차이가 있기에 이렇게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것인지 일반인으로선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단지 다름의 차이는 어디서 비롯됐을까 하는 일종의 짧은 고찰이다.  

▲ 가수 이승환은 자신의 건물 드림팩토리에 '박근혜는 하야하라' 현수막을 내걸 만큼 정치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사진=이승환 페이스북 캡처]

외국 스포츠스타와 비교를 해도 마찬가지다.

현재 레알 마드리드를 지휘하고 있는 지네딘 지단 감독은 현역 시절 정치적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 극우 정당이 이민자와 유색인에 대한 증오 발언을 일삼자 기자회견을 열고 '반인륜적 선동'이라며 비판했다.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 지지했던 ‘농구왕’ 르브론 제임스는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큰 충격을 받았다. 미국프로농구(NBA) 우승팀은 백악관으로 초청되는데 그는 "챔피언에 올라도 참석할지 모르겠다"고 말해 관심을 모았다.

이에 비해 국내 스포츠스타는 사회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먼저 체육계의 보수적인 문화를 꼽을 수 있다. 소신발언은 곧 돌출행동으로 여겨지는 곳이 스포츠계다.

중학교 때까지 육상 단거리 선수로 활동했던 정희준 동아대학교 체육학과 교수는 “스포츠계는 선후배간 위계질서가 세다. 한마디로 육체적, 정신적으로 권력에 종속돼 있어 입을 열지 않는 것에 길들여져 있다”며 “조직에 대한 충성심도 강하다. 지배를 당함과 동시에 혜택도 입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등록금도, 월급도 줬는데 쓴소리 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인천의 한 중학교 체육교사 B씨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찍힌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다. 진학이든 대표선발전이든 상훈이든 어떻게든 나중에 피해를 입을까봐 두려워한다”며 “팀 스포츠의 경우는 더하다. 젊은 친구들이 튀려 한다면 고참이 ‘무난하게 넘어가자’며 압박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운동 외 다른 이슈에 관심이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금이야 ‘공부하는 운동선수’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수업 참여가 필수가 됐지만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운동부는 공부 안 한다’는 시각이 절대적이었다.

김포 통진고 출신의 축구인으로 현재 대한축구협회 법무를 담당하고 있는 이중재 변호사는 저서 ‘독학의 권유’에서 "신촌역 근처 파라다이스라는 카페를 못 찾아 이화여대생과 미팅에 못 나간 적이 있다. 간판이 영어로만 쓰여서”라는 웃픈 이야기를 털어놓은 바 있다.

정희준 교수는 “한국 스포츠인의 대부분이 정치에 대해 관심이 없다. 어릴 때부터 운동만 해왔기 때문에 사고가 하나로만 갇혀져 있다. 절대 다수가 대학교 때까지 아르바이트도 한번을 안 해본다”고 지적했다.

체육교사 B씨 역시 "엘리트 체육인 가운데 확고한 미래 비전을 세운 일부만 공부를 열심히 한다"며 "현재 우리 학교 운동부 친구들은 중2 과정만 반복해 배우는데 제대로 알아듣는 지도 의문”이라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체육인의 체제 순응적인 성향과 태도는 그동안 국가가 주도적으로 엘리트 스포츠 정책을 펼쳐온 관(官) 주도 시스템에서 비롯되기도 했다. 아마추어 선수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예산을 지원받는 대한체육회 산하 57개 가맹단체에 속해 있다. 그러다보니 권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최근 공분을 산 박태환과 대화 녹취록에서 김종 전 차관이 “나는 참 김연아를 안 좋아해”, “안현수가 러시아에서 금메달을 따서 러시아에서 인정받아? 걘 그냥 금메달 딴 애야”, “유승민은 흠이 있어서 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이 될지 모르겠다”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스포츠영웅 박태환, 김연아, 유승민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은 것도, 심지어 박태환의 리우 올림픽 출전을 막으려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김종 전 차관이 무서웠다는 박태환. 그 이유는 관 주도의 시스템 속에서 권력자로부터 ‘밉상’으로 찍히면 끝장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포츠계는 또한 기획사, 홍보사 등 개인 기업에 속한 연예계와는 근본적으로 다를 수 있다. 스포츠에 비해 팬덤이 넓고 깊게 자리 잡은 연예계에서 배우나 가수의 경우 대중의 관심은 인기와 돈으로 직결된다. 이 때문에 연예인들은 끊임없이 대중과 소통하며 관심 끌기에 열성이다. SNS에 다채로운 발언으로 공을 들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근본적으로 튀어야 사는 연예계, 문화계 인사들과 달리 스포츠스타는 대체로 경기장 바깥의 일로 화제가 되는 걸 꺼린다. 경기 전후 인터뷰도 "최선을 다하겠다" "감독, 코치님께 감사하다" "운이 좋았다" 등 '예상 가능'한 단순 코멘트 일색이다. 프로스포츠 미디어데이 행사가 "형식적이고 재미없다"는 팬들의 반응은 이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체육인은 "체육 전반이 '질서'로 포장하는 'X군기'를 계속 안고 가는 한 최순실 게이트같은 일이 터져도 체육계가 쉬쉬하는 분위기가 계속될 것”이라며 “체육계 내부에서는 매번 ‘조용히 고치자’고들 하는데 그렇게 해서 고쳐지겠나”라고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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