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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박경훈 추일승 염경엽 최태웅, '공부하는 지도자'가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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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박경훈 추일승 염경엽 최태웅, '공부하는 지도자'가 뜬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6.12.15 1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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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지도자 전성시대, 리그에 미치는 긍정적인 효과는?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용장 지장 덕장 위에 운장(運將) 또는 복장(福將).”

프로 스포츠계에서 감독 유형이 거론 될 때마다 곧잘 나오는 우스갯소리다. 한마디로 운이 있는 감독, 복이 있는 감독이 용장 지장 덕장보다 훨씬 낫다는 이야기다.

종목별로 ‘복장’ 소리를 듣는 감독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운이나 복이라는 것은 있다가도 없는 등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고사성어처럼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을 다하고 나서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것이 마땅하다.

▲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 1일 성남FC 사령탑에 부임한 박경훈 감독은 내년 시즌 성남의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위해 온 힘을 쏟고 있다. [사진=성남FC 제공]

요즘 프로스포츠에서는 인간 아니 감독으로서 해야 할 일을 ‘공부’로 여기고 ‘열공’하는 지도자들이 늘고 있다. 물론 한 팀의 지휘봉을 잡은 감독 중에 공부 또는 연구를 안 하는 지도자는 없다. 행여 그랬다간 선수는 물론 팬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런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도 유독 공부나 연구에 매달리는 열공파들이 있다. 공부의 중요성을 잘 알기에 밤늦게까지 전술서, 전력분석표와 씨름하고 있는 이들의 스토리를 들여다봤다.

# 공부하는 지도자 박경훈, 뭔가를 보여줘!

공부하는 지도자가 주목을 받는 건 올해 창단 처음으로 K리그 챌린지 강등을 겪은 성남FC의 행보에서 잘 나타난다. 지난 1일 성남FC 새 사령탑이 된 박경훈(55) 감독은 축구계에서 잘 알려진 전술가다. 현재 전주대 축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기도 하다.

“박경훈 감독은 공부하는 지도자로서 축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 외에도 선수들과 원활한 소통을 통해 팀워크를 극대화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성남의 선수강화위원으로 활동하며 구단의 철학과 방향성도 잘 이해하고 있다.”

박 감독을 선임한 성남 구단의 평가다.

박경훈 감독은 과거 제주 사령탑 시절 매년 특색 있는 팀 컬러를 잡아 직접 이름을 붙였다. 2010년 ‘삼다 축구’(돌처럼 단단하고 바람처럼 빠르고 여자처럼 아름다운 축구), 2012년 ‘방울뱀 축구’(상대의 빈틈을 단번에 파고드는 방울뱀처럼 예리한 축구), 2014년 ‘오케스트라 축구’(서로 다른 악기를 연주하며 조화를 이루는 오케스트라처럼 팬들에게 감동을 안기는 축구)가 대표적이다. 특히 삼다 축구를 표방한 2010년에는 K리그 정규리그 2위, 포스트시즌 준우승에 오르며 명장 반열에 들어섰다.

사실 공부 열풍은 큰 흐름이다. 지난 9일부터 파주 국가대표트레이닝센터(NFC)에서 진행되고 있는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P급 지도자 강습회에는 국내 지도자 24명, 해외 지도자 3명이 참가했다. 신청 인원은 100명이 훌쩍 넘었다.

P급 지도자 자격증은 AFC의 지도자 교육 중 최상위 등급이다. AFC가 주관하는 챔피언스리그 벤치에 앉기 위해서는 이 자격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하지만 취득 여부를 떠나 P급 자격증 과정을 밟는 것이 지도자로서 자신의 축구를 정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목소리가 높다. 강습회에 참가한 노상래 전남 수석코치는 “평상시에 알고 있는 내용도 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돌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지 좀 더 준비할 수 있는 유익한 강의인 것 같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 추일승 감독(가운데)이 11월 15일 원주 동부전에서 오리온 선수들에게 작전을 내리고 있다. [사진=KBL 제공]

# 추일승, 농구계 학구파의 또다른 존재감

공부에 빠진 지도자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프로농구 추일승(53) 고양 오리온 감독은 농구계에서 알아주는 ‘학구파’다. 과거 프로농구 마케팅에 관한 논문으로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농구 전문 매체도 만들었다.

그간 뒷심이 약하다는 평을 받았던 오리온에 ‘포워드 농구’라는 색을 입힌 추일승 감독은 2015~2016시즌 감독 인생 첫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가드 1명에 포워드 4명을 두는 독특한 농구였지만 오리온과 궁합이 딱 맞았다. 왕성한 활동량으로 강력한 압박이 가능했던 포워드진들이 상대의 득점을 묶을 수 있었고 외곽에서도 무시무시한 힘을 발휘했다.

추일승 감독은 우승에 도취되지 않았다. 지난 시즌 챔피언에 오른 뒤 미국과 유럽의 선진 농구를 보며 오리온에 맞는 패턴을 연구한 추 감독은 올 시즌을 앞두고 해외 전술서를 독파, 100개의 작전을 만들었다. 공부에 대한 추 감독의 열정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10월엔 자신의 3번째 농구서적을 발간하며 농구 전술의 보급에도 힘썼다.

홍대부고와 홍익대를 나온 추일승 감독은 농구계 대표적인 ‘비주류’이지만 끊임없는 연구와 노력에 힘입어 올 시즌에도 오리온을 상위권으로 이끌고 있다.

# 프로야구 염경엽, '나는 또 공부하러 간다'

프로야구에선 염경엽(48) 전 넥센 히어로즈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준플레이오프 패퇴 후 자진 사퇴한 염경엽 감독은 지독한 ‘메모광’이었다. 선수로선 실패했지만 지도자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열망이 강했던 게 ‘메모쟁이’가 된 이유였다.

경기 상황을 세세하게 기록하면서 자신의 야구를 만들어간 염경엽 전 감독은 자원이 넉넉지 않은 ‘없는 살림’에도 넥센의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염경엽 감독이 넥센을 지휘하던 시절 시행한 시스템 중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것이 있다. 바로 유망주들의 ‘등급별 관리’다.

어린 선수들을 A, B, C 등급으로 나눠 관리한 염 감독은 선수에 따라 단계를 설정하고 그에 맞는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팀의 미래를 짊어질 유망주들을 가끔씩 1군에 동행시켜 선배들과 함께 훈련하게 했고 1군 경기도 보게 하면서 동기부여를 했다. 2년 전 루키 시절부터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퍼포먼스를 본 김하성이 선배가 떠난 후 KBO리그 정상급 유격수로 성장했고 A등급에 속하며 꾸준히 1군에 모습을 비춘 임병욱이 올해 외야 한 자리를 꿰찼다.

전문가들은 넥센 지휘봉을 내려놓고 야구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떠난 염경엽 전 감독이 돌아오면 많은 구단에서 뜨거운 영입전을 벌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 최태웅 감독은 올 시즌 '업템포 2.0'의 스피드 배구를 추구하며 현대캐피탈의 순항을 이끌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그밖에 프로배구에서는 최태웅(40) 천안 현대캐피탈 감독이 연구하는 지도자로서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다. 최태웅 감독은 세계배구의 흐름인 스피드배구를 현대캐피탈 배구단에 장착해 지난 시즌 정규리그 우승을 이끌었으며 올 시즌에도 다양한 전술 전략을 실험하며 자신만의 배구컬러를 보여주고 있어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전해주고 있다.

공부하는 지도자가 점점 늘고 있는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할까?

프로농구 서울 삼성 감독을 역임한 김동광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농구 감독들은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술을 갖고 와서 한국농구에 맞게 개조하고 맞춘다. 이로 인해 팬들에게 조금 더 나은 농구를 보여줄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서 “지도자가 농구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선수들이 먼저 알아챈다. 한 시즌이 끝난 뒤 다음에는 다른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반드시 연구해야 한다. 공부하지 않는 지도자는 자연적으로 도태된다”고 지도자 스스로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운장 복장 위에 ‘공부하는 지도자’, 이런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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