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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현장Q] 정유라 특혜에 절망하는 체육특기자, '비정상의 정상화' 이루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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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럼현장Q] 정유라 특혜에 절망하는 체육특기자, '비정상의 정상화' 이루려면?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6.12.15 2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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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심포지엄'...성적 반영 강화-학사관리 통합관리기구 신설, 초중고스포츠연맹 설립 제안

[스포츠Q(큐) 글·사진 안호근 기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결을 이끌어 낸 것은 230만 촛불의 힘이었다. 그리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인 것은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의 딸 승마선수 특기생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특혜에서부터 시작됐다. 학사경고 3번에도 제적 없이 졸업할 수 있었던 최순실의 조카 승마선수 특기생 장시호도 마찬가지.

학부모들은 ‘승마선수를 시켜줄 수 없는 아빠·엄마가 미안하다’라는 팻말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기도 했다. 입시를 준비 중인 고등학생들과 대학문을 힘들게 통과했지만 아르바이트를 통해 등록금을 벌며 고단한 학업을 이어가는 학생들은 허탈함과 동시에 분노를 촛불로 표출했다.

▲ 15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심포지엄이 열렸다. 왼쪽부터 하웅용 한체대 교수, 박진경 가톨릭관동대 교수, 석영민 체육특기생 어머니, 유승민 IOC 선수위원, 최관용 한체대 교수, 박지훈 변호사, 김창금 한겨레신문 기자, 허정훈 중앙대 교수, 전용관 연세대 교수.

14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정유라의 입학을 위한 승마협회의 허위문서 작성 등 특혜 정황을 포착했고 관계자들에 대한 징계를 대한체육회에 요청했다. 하지만 단발성의 조치가 아닌 학생선수들과 관련한 문제 전반에 대해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이에 15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문화체육광광부와 교육부가 주최하고 한국대학스포츠총장협의회(KUSF)가 주관한 '체육특기자 제도 개선 심포지엄'이 열렸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 '정유라 특혜'에서 새겨보는 체육특기생 비리-학사관리 문제 

크게는 체육특기자에 대한 선발과 학사관리에 대한 문제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이번에 가장 큰 논란을 빚었던 것은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 과정에서 나온 특혜였다.

박진경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체육특기자 선발의 비리 유형으로 대학입시 전형일정에 앞서 운동선수 혹은 고등학교에 스카우트비를 지급하고 불공정하게 특기자를 선발하는 사전 스카우트, 기량이 떨어지는 선수를 우수선수와 함께 묶어서 입학시키는 ‘끼워넣기’, 특정 선수를 입학시키기 위해 벌어지는 경기 실적 부정발급, 정유라와 장시호의 경우처럼 특정 선수를 선발하기 위해 선발 종목이나 기준을 변경하는 사례 등을 꼽았다.

박진경 교수는 “체육특기자 입학과 관련된 심의기구를 설치해 교육부의 인성체육교육과(학교운동부 관리)와 대입제도과(대학입학전형관리)의 체육특기자 담당 업무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박진경 가톨릭관동대 교수가 체육특기자 선발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대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어 “학생중심 체육특기자 선발 체계를 구축해 전·후기, 수시, 정시 등 시기별로 여러 번의 응시 기회를 부여하고 단체 종목의 개인기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면 끼워넣기 등을 방지할 수 있다”며 “사전에 미리 종목별, 포지션별 인원을 규정해 임의적으로 바꿀 수 없게 하는 것도 중요하며 야구의 경우 타율, 평균자책점 등 규정을 명확히 하는 대입전형 표준요강의 개발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허정훈 중앙대 교수는 체육특기자에 대한 부실한 학사관리에 주목했다. 국정농단 사태로 조명을 받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훨씬 더 많은 학생 선수들과 학교들이 학사관리의 허점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부를 안하는 것이 당연시되는 체육계의 문화를 지적하며 엘리트주의 스포츠 구조에서는 모두가 '공범자'라고 일갈했다. 지도자와 학부형, 국가와 연맹, 학생들까지 모두가 공부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문화라는 지적이다.

허정훈 교수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선수들이 운동을 중도에 포기하거나 은퇴를 하더라도 스스로 미래의 삶을 그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KUSF를 전미대학체육연맹(NCAA)의 한국적 모델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골프선수 박지은의 경우 학교시험을 치르기 위해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출전도 포기한 사례를 제시하며 그만큼 엄격한 학사관리로 유명한 NCAA를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것.

그는 가칭 초중고 스포츠연맹을 만들어 스포츠권과 학습권을 확실히 보장하고 대회 참가와 운동시간에 제한을 두고 학업에 참여할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 허정훈 중앙대 교수가 체육특기자의 학사관리의 문제점과 개선방안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해외 벤치마킹도 방법, 성적만능주의-지도자 비정규직 등 현실적 문제도 고려해야

전용관 연세대 교수는 ‘운동하지 않는 학생, 공부하지 않는 학생선수’라는 말이 학교체육의 문제점을 보여준다며 스포츠클럽을 통한 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모범적 사례를 보이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전용관 교수는 “일본 부카츠(스포츠클럽)와 같이 스포츠클럽을 통해 공부하는 선수를 육성하고 미국처럼 엄격한 학업기준을 두고 학생선수들에게 공부를 시켜야 한다”며 “이를 위해 가칭 한국형 통합 스포츠 시스템을 구축하고 KUSF의 역할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USF의 집행위원인 하웅용 한체대 교수는 대학스포츠의 내실화를 위한 KUSF의 노력을 소개했다. 2017년부터 KUSF에서 주최하는 축구, 야구, 농구, 핸드볼 대회의 경우 직전 2학기 C학점 이상을 받아야 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규정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웅용 교수는 “체육특기자 자격 검증센터를 마련해 대입제도 자체를 운영·관리할 것”이라며 “대학입시 전형에 있어 2017년부터 모든 체육특기자의 경우 내신을 반영하고 2018년부터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반영토록 추진할 것이다. 또 2019년에는 체육특기자의 입시와 학사관리를 할 수 있는 기구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 고3 축구 특기생 자녀를 둔 석영민 씨(왼쪽에서 2번째)는 "우리 아이들은 1년에도 몇 번씩 수능을 치르는 심정으로 경기장에 나선다"라며 결과 중심의 입시제도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했다.

종합토론에 패널로 나선 고교졸업반 축구 특기생의 어머니 석영민 씨는 “우리 아이들은 1년에도 몇 번씩 수능을 치르는 심정으로 경기장에 나선다. 전국대회 4강에 들어야 소위 ‘인(in) 서울’ 대학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결과가 중요하기 때문에 지도자와 부모들도 아이들에게 스포츠맨십, 동료애보다는 ‘너만 잘 하면 된다, 상대 팀이 다치는 건 상관없다’ 식으로 가르친다. 이 아이들이 지도자가 된다면 결국 똑같은 것을 가르칠 것”이라고 한탄했다.

이어 석 씨는 “현장에서도 공부 못해도 운동만 잘 하면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다”며 말뿐이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적용될 수 있는 개선 방안들을 만들어 달라고 촉구했다.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은 “운동하는 선수들도 자연스럽게 공부하고, 공부하는 선수들도 운동에 마음껏 참여하는 분위기가 돼야 한다"며 “초등학교 때부터 인식의 전환을 시켜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체육 강국으로서 위상도 유지할 수 있고 나아가 체육하는 사람들이 은퇴 후 스스로 일을 찾거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포츠문화연구소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박지훈 변호사는 “원하는 전공을 택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지도자들이 대부분 비정규직이기 때문에 성적만능주의에 빠질 수 없는 것도 한계”라고 꼬집었다.

[취재 후기] 4차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서 정유라 특혜를 둘러싼 이화여대 관계자들의 진실공방이 벌어진 날 심포지엄 현장에서 인기 만화 슬램덩크가 떠올랐다. 농구선수인 주인공들은 4과목 이상 낙제를 받아 전국대회 출전이 무산될 뻔한 위기를 겪는다. 결국 합숙을 하며 ‘열공 모드’에 들어가고 재시험에서 통과해 전국대회에서 파란을 일으킨다. 20년도 더 지난 작품이지만 스포츠 선수의 학업을 중시하고 엄격히 관리하는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사례다. 늦었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체육계의 입시 비리를 바로 잡는 동시에 공부하는 운동선수, 운동하는 학생을 키워낼 수 있는 문화 정립과 이를 전담·관리할 수 있는 기구의 설립이 시급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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