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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포트] 수상한 작품의 수상한 팬덤, '아수리언'과 '부랴리언'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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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리포트] 수상한 작품의 수상한 팬덤, '아수리언'과 '부랴리언'을 아시나요?
  • 주한별 기자
  • 승인 2017.02.06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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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주한별 기자]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해 상업적으로 실패한 영화로 통하는 '아수라', 평균 시청률 5%로 막을 내린 드라마 '불야성', 이 두 작품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영화 '아수라'와 드라마 '불야성'은 저조한 관객 수·시청률로 '망한 작품'이라고 평가받지만 두 작품은 열광적인 팬덤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영화 '아수라'의 팬인 '아수리언'과 드라마 '불야성'의 마니아인 '부랴리언'이 그들이다.

마니아에게 사랑 받는 작품이 있다. 보통은 특정 취향을 가진 사람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경우다. 아수리언과 부랴리언, 그들은 왜 '아수라'와 '불야성'에 열광하는 것일까?

영화 '아수라'와 MBC 드라마 '불야성'의 포스터 [사진 = CJ엔터테인먼트·MBC 제공]

# 아수리언, “늬들이 영화의 참 맛을 알아?”

아수리언은 이미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유명세를 타고 있는 팬덤이다. 영화 '아수라'는 안 봤어도 아수리언은 알고 있다는 누리꾼들이 있을 정도다. 주로 온라인을 통해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수리언들은 '아수라' 속 가상공간인 안남시 시민을 자처하며 SNS에서 '안남시민연대'라는 가상의 연대를 만들기도 했다.

'아수라'는 손익분기점(380만 명)을 넘지 못하고 상업적으로 실패를 거둔 작품이다. 최근 유행하는 범죄 스릴러 영화와 달리 '아수라'는 수위 높은 폭력성과 권선징악 없는 결말로 대중에게 외면 받았다. 그러나 '아수라' 팬덤은 폭력만이 난무하는 ‘안남시’에 열광했다.

아수리언들의 팬 활동은 SNS에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안남시민연대는 지난 광화문 촛불시위 당시 깃발을 제작해 시위에 참여하며 화제를 모았다. 그 뿐만이 아니다. '아수라'의 극장 상영이 끝난 지난 2016 11월 20일에 아수리언들은 직접 영화관을 대관해 상영회를 개최하기도 했다(주최넥타이님(@Sungbeasnecktie)). '안남시민의 밤'이라는 행사에는 '아수라'의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뿐만 아니라 주연 배우인 정우성이 참여하며 시선을 모았다.

영화 배급사·홍보사가 아닌 팬들의 자발적인 주최로 열린 행사에 배우와 감독이 참여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은 천만 영화조차도 팬들이 직접 나서 단체 상영을 위한 대관을 진행하는 일은 없다. '안남 시민의 밤' 당시 열광적인 아수리언들의 모습에 배우 정우성은 "여러분들 미쳤어요?"라는 농담으로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면 아수리언들이 이토록 '아수라'에 '미친' 이유는 무엇일까?

광화문 촛불집회에 참여한 '안남시민연대'(좌)와 트위터 안남시 계정들(우) [사진 = @m_furo 트위터·트위터 화면 캡처]

영화 '아수라'의 팬을 자처하는 20대 여성 아수리언 A씨는 "'아수라'는 기존의 한국 영화와 다른 매력이 있다. 가상의 '안남시'라는 공간에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끝없는 악과 폭력의 반복은 뻔 한 권선징악이 반복되는 한국영화와는 다른 재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수리언들은 '아수라'에 매료되는 이유 중 하나로 영화 속 가상의 공간인 안남시를 꼽았다. 안남시는 '아수라'의 캐릭터들이 끝없는 악행을 전시하는 장소다. 현실에 존재하는 것 같은 안남시라는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비현실적이고 개연성 없는 폭력들이 색다른 매력을 아수리언들에게 준다.

실제 많은 창작물의 가상공간은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해리포터' 시리즈의 호그와트와 '다크나이트' 속 배트맨이 활약하는 고담시티가 그 예다. 아수리언들은 자신들을 가상의 공간인 안남시 시민이라고 칭하며 SNS에 '국립 안남대학교', '안남시 여성회관', '안남시 도시주택국'이라는 유쾌한 계정을 만들었다. 영화 '아수라' 자체만이 아닌 '아수라'를 좋아하는 사람들 끼리 유머코드를 공유한 셈이다.

아수리언들의 적극적인 온라인 활동, 즉 '영업' 덕분에 아수리언들의 수는 늘고 있다. 이들은 '아수라'의 상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VOD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관람하며 새롭게 아수라 팬덤에 합류하고 있다. 이 같은 수상한(?) 팬덤에 대해 '아수라'의 주연을 맡은 배우 정우성은 "무엇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요즘 세대들은 '아수라'를 다른 관점에서 좋아하고 열광하는 듯하다"며 '아수라'의 독특한 팬덤에 놀라워하기도 했다.

'불야성'은 이요원과 유이의 워맨스로 부랴리언이라는 독특한 팬덤을 형성했다. [사진 = MBC 제공]

한 대중문화 평론가는 이런 현상에 대해 “싸이로 시작된 ‘B급 문화’ ‘B급코드’에 대한 대중들의 호응과 열광이 여전히 뜨겁다”며 “이는 단순히 영화뿐만 아니라 TV 드라마와 예능 등 사회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으며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 부랴리언, 이요원과 유이의 워맨스에 빠지다

기존에 볼 수 없던 독특한 팬덤 문화를 보여준 것은 아수리언 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24일 종영한 MBC 드라마 '불야성'은 5% 안팎의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당시 경쟁 드라마였던 SBS '낭만닥터 김사부'가 20% 후반 대의 높은 시청률로 종영한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불야성'이 월화드라마 시청률 꼴찌를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수 마니아층은 스스로를 '부랴리언'이라고 칭하며 전혀 색다른 시각으로 드라마를 재해석하며 열광한다. 그들이 '불야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부랴리언들은 '불야성' 속 서이경(이요원 분)과 이세진(유이 분)의 로맨스에 주목한다. '불야성'에는 남자 주인공인 박건우(진구 분)가 있지만, 실제 화제를 모았던 건 이요원과 유이의 워맨스였다. 부랴리언들은 이요원과 유이의 워맨스를 응원하며 둘의 관계에 열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실제 부랴리언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레즈비언 로맨스인 영화 '캐롤'과 '아가씨'의 팬 층이기도 하다. 이는 부랴리언들이 여성 캐릭터와 여성 캐릭터간의 관계성에 집중하는 시청자 층이라는 것을 뜻한다. 최근 20·30대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열풍이 불고 있기 때문에 여성 캐릭터들이 주축인 여성 퀴어 콘텐츠 역시 흥행하고 있다. '불야성'의 의외의 팬층은 이 같은 페미니즘 열풍의 현상 중 하나라고 분석할 수 있다.

부랴리언들이 '불야성' 촬영 현장에 보낸 서포트 [사진 = 서포트럭 인스타그램 화면 캡처]

부랴리언인 20대 대학생 B씨는 "'불야성'의 이요원과 유이의 관계는 로맨스에 가깝다. 브로맨스는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다뤄진 소재였지만 여성캐릭터 간의 케미를 다루는 일은 극히 적었다"며 부랴리언들이 '불야성'에 열광하는 이유를 밝혔다.

부랴리언들은 이요원과 유이의 애틋한 장면을 편집해 영상으로 만들어 공유하고, 드라마 촬영 현장에 커피와 차를 나르는 등 열정적인 팬 활동을 하고 있다. '불야성'은 한국뿐만 아니라 최근 한류가 뜨거운 중국에서도 부랴리언을 양성하며 마니아층에게 사랑받고 있다.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B급 정서가 사회 전반에 걸쳐 흐르고 있다”며 “ 이는 기성 체제와 권위를 비웃고 저항한다. 먹고 살기 팍팍한, 상위 1%가 다 해먹는 승자독식사회에서 비주류가 ‘나도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일종의 열망 표출”이라고 진단한다.

대중에게 외면 받은 '아수라'와 '불야성'의 독특한 재미와 코드에 응답한 아수리언과 부랴리언, 그들의 행보에 남다른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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