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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포볼 직구 방어율, '야구용어 순화' 어디까지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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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포볼 직구 방어율, '야구용어 순화' 어디까지 왔나?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03.07 08: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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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일본식 야구표기…"KBO와 미디어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저 투수의 ‘방어율’은 매우 낮군요.”

“이 팀은 ‘원정경기’ 승률이 매우 높습니다.”

야구 중계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멘트’다.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은데 거기에는 잘못된 용어가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산하기구였던 야구용어위원회에서 내린 결정사항에 따르면 ‘방어율’은 ‘평균자책점’으로, ‘원정경기’는 ‘방문경기’로 순화된 용어를 써야 한다.

▲ KIA 양현종이 던지는 공은 직구? 패스트볼? [사진= 스포츠Q DB]

6일 제4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개막되면서, 그리고 프로야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신문, 방송 등 미디어는 더 많은 야구 소식을 전하게 됐다. 이에 비해 바른 표현을 쓰려는 노력은 다소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초창기 ‘야구 규칙집’으로 일본야구 규칙을 번역해 사용하면서 야구 용어에는 일본식 표현이 주를 이뤘다. 언론사는 이를 자체적으로 바로잡기보다는 ‘대선배부터 사용해 왔다’는 이유로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용어를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쿠세(버릇)’, ‘4구(四球)’ 등 일본식 용어가 그대로 전파를 타거나 지면에 올랐다.

KBO와 대한야구협회(KBA)는 이를 더 이상 두고 볼 수만은 없다며 2005년 한국야구 10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야구 용어를 재정비하기로 결정하고 8명의 전문위원으로 구성된 야구용어위원회를 발족했다. 

당시 KBO 사무차장을 지낸 이상일 스포츠투아이 야구학교 교장은 “야구용어위원회가 처음부터 꾸준히 운영되기 위해 설립된 건 아니었다. 당시 야구 용어가 일본식으로 중구난방 사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말이든 원어(영어)든 하나로 통일시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용어 정리만 한 뒤에 바로 해산했다”고 밝혔다.

현재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인 허구연 씨를 위원장으로 한 야구용어위원회는 2006년 언론을 통해 야구 용어 개정 작업 1차 변경안이라는 성과물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방어율’은 ‘평균자책점’으로, ‘원정경기’는 ‘방문경기’로, ‘루선’은 사람이 주체일 경우 ‘베이스 라인’으로, 공이 주체일 경우 ‘파울 라인’으로 각각 변경됐다. 또 ‘사구(四球)’가 ‘볼넷’으로, ‘사구(死球)’가 ‘몸에 맞은 공’으로 바뀌었다.

▲ 많은 언론들이 '힛 포 더 사이클'을 '사이클링 히트'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힛 포 더 사이클을 달성한 뒤 KBO로부터 상을 받은 두산 박건우(가운데). [사진= 스포츠Q DB]

◆ 일제 영향 받은 야구용어들, '원어'로 쓰는 게 원칙

위 사례에서 알 수 있듯 일본식 한자로 된 과거 표기들 가운데 현재 상당수가 우리말이나 원어로 순화되어 사용되고 있다.

이상일 교장은 “야구 용어가 일제 영향을 받으면서 고착화 된 것을 후배들이 이어받았는데, 시간이 지나 ‘일본식 표현이니 영어 혹은 한국어로 바꿔 부르자’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이후 원어인 영어로 변경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자고 결론이 났다”고 설명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직구(直球)’는 지금도 적지 않은 미디어가 사용하는 일본식 용어다. 투수가 던질 수 있는 가장 빠른 구종이고 좌우 변화가 가장 적은 공이어서 ‘똑바로 나가는 것’ 같이 보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직구를 써왔다. 하지만 직구보다는 빠른 공이라는 의미의 ‘속구’나 ‘패스트볼(Fast ball)’이란 표현이 적합하다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투수가 공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투심 패스트볼(Two seam fast ball)’, ‘포심 패스트볼(Four seam fast ball)’, ‘컷 패스트볼(Cut fast ball)’로 나뉘기 때문에 직구를 패스트볼로 부르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직구의 반대말인 ‘변화구’도 최근 들어 미국식인 ‘브레이킹 볼(Breaking ball)’로 사용되는 추세다.

과거 TV 중계방송 등에서 자주 언급됐던 일본식 영어 표기도 요즘에는 점점 원어로 바꿔 부르고 있는 상황이다. 타자들의 타격 연습(배팅볼 투수가 던지는 공을 치는 것)을 하는 걸 두고 ‘프리 배팅(Free batting)’이란 말을 쓰는데, 이는 일본식 표현이다. 미국식으로는 ‘배팅 프랙티스(Batting practices)’라고 한다.

또 투수가 던진 공이 포수 미트 구석구석에 제대로 컨트롤 될 경우 ‘코너 워크가 완벽했다’고 하는데, 미국은 ‘로케이션(Location)’이라고 표현한다.

이밖에도 ‘하프 스윙(Half swing‧배트가 반 정도 나간 스윙)’을 ‘체크 스윙(Check swing)’, ‘사이클링 히트(Cycling hit‧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한 경기에서 모두 기록하는 것)’를 ‘힛 포 더 사이클(Hit for the cycle)’, ‘버스터(Buster‧번트 자세에서 갑자기 자세를 바꿔 타격하는 것)’를 ‘페이크 번트(Fake bunt)’, ‘라이너(Liner‧곧게 날아가는 타구)’를 ‘라인 드라이브(Line drive)’로 바꿔 부르는 움직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 한국 최초 돔구장인 고척 스카이돔을 가득 메운 야구팬들. 전문가들은 인프라가 발전하는 것만큼 야구 용어의 선진화도 따라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 스포츠Q DB]

◆ 강제성 없는 용어 순화 작업…"결국 모두가 노력해야"

언어는 사회성을 가진다. 모든 언어는 그 언어를 쓰는 사회 구성원 간의 사회적 약속이다. 야구 종사자들도 하나의 사회라고 할 수 있기에 일본의 손때가 묻지 않은 올바른 용어를 쓰자는 약속을 하고 실천한다면 야구 용어 순화 움직임은 더 확산될 수 있다.

하지만 현재는 야구용어위원회 같은 기구가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미디어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순화된 용어만 사용하라고 강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미디어 스스로 야구 용어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고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야구팬들도 혼란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상일 교장은 “KBO가 먼저 중요성을 일깨우고 미디어도 야구 용어를 바로 쓰는 캠페인을 한다면 조금 더 빨리 순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한두 사람이 아닌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으로 야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진 가운데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서라도 잘못된 표현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잘못 써왔던 수많은 야구 용어들. 조금만 신경 쓴다면 일본의 잔재를 털어버림은 물론, 새로운 용어를 앎으로써 더 많은 재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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