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3 18:51 (화)
[SQ스페셜] 김경문-김태형-김기태 '동병상련', 당신의 감독은 안녕하십니까
상태바
[SQ스페셜] 김경문-김태형-김기태 '동병상련', 당신의 감독은 안녕하십니까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7.10.26 11: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음의 병에 신음하는 감독들, 근본적인 해결책은 없을까?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2014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샀던 자이언티의 대표곡 ‘양화대교’의 가사다. 어린 시절 택시기사를 한 아버지를 추억하며 가족이 행복하길 바라는 노래다. 하루하루 힘겨운 삶 가운데서도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길 원하고 있다.

비단 가족뿐일까. 우리는 자신을 포함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길 원한다.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훌훌 털고 일어나길 바란다.

 

▲ 10월 10일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조진호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하지만 어디 세상만사가 사람 마음대로 될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그것이 ‘먹고 사는 것’과 연결되면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몸이든 마음이든 고장 나기 마련이다.

2017년. 프로 스포츠 감독들에게는 시련의 계절이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해도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간다.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마주하는 필연적인 스트레스가 감독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지난 10일 축구계에서 비보가 전해졌다. 그간 부산 아이파크의 K리그 클래식 승격을 위해 힘써온 조진호(44) 감독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을 떠난 것. 이달 8일 K리그 챌린지 선두인 경남FC와 맞대결에서 패한 뒤 SNS를 통해 아쉬움을 표했던 조 감독은 이틀 뒤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다.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고들 하지만 성적 하나에 모든 게 좌지우지되는 감독은 매 순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감독 역시 시즌 막바지로 갈수록 승격에 대한 부담이 커지면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 김경문 감독(왼쪽)과 김태형 감독. 두 사령탑은 올 시즌 도중 건강 이상으로 자리를 비웠다. [사진=스포츠Q DB]

 

◆ 김경문-김태형-김기태 '병원행', 상위팀 감독도 아프다

“감독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의 생사가 달려 있거든요.”

인하대학교 배구부를 지휘하고 있는 최천식(52) 감독의 말이다. 프로배구 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최 감독은 프로팀 감독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일단 프로배구팀 사령탑의 경우, 정당한 처우를 받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극히 일부 감독들을 제외하고는 계약 조건이 불리하게 돼 있다”며 “계약금도 없다. 선수들의 연봉이 감독의 2~3배가 되면 감독이 선수를 통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구단 입장에서는 성적이 안 나면 정리 대상 1호가 감독이다. 선수단을 물갈이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 잘못하면 정리된다’는 부담감이 늘 짓누르고 있다. 때문에 선수들에게 잘 보여야 하고 싫은 말을 못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선수에 비해 열악한 근무환경이 마음의 병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천식 감독은 “배구감독들은 랠리 하나하나에도 혈압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한다. 항상 위험한 순간을 겪고 있다고 봐야 한다. 혈압이 높은 분이 맡으면 위험하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까지 프로배구 수원 한국전력을 이끌었던 신영철(53) 전 감독 역시 “주로 하위권에 머문 팀을 맡았는데, 순위를 올려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면서 “나 같은 경우에는 두통이 올 때가 많았고, 어떨 때는 불면증도 겪었다. 아마 대부분의 감독들이 시즌 중에는 두 다리 뻗고 못 잘 것”이라고 사령탑에 올랐을 때 고충을 털어놨다.

 

▲ 사령탑 부임 3년 만에 팀을 한국시리즈에 올려놓은 김기태 KIA 감독. 시즌을 치르면서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사진=KIA 타이거즈 제공]

 

프로축구와 프로배구 지도자만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니다. 정규리그만 144경기를 치르는 프로야구 감독들도 상상 이상의 정신적 압박감을 받는다. 유독 올 시즌 도중 병원을 드나드는 감독들이 많았다.

신생팀의 4년 연속 가을야구를 이끈 김경문(59) NC 다이노스 감독은 정규시즌 도중 건강 이상으로 자리를 비웠다. 7월 28일 수원 kt 위즈전을 앞두고 급체와 어지럼증을 호소해 지휘봉을 내려놓고 입원했다. 

진단 결과 뇌하수체에 직경 2㎝ 미만의 작은 선종이 발견됐다. 다행히 악성은 아니었지만 환갑을 앞둔 김 감독이기에 NC 선수단의 동요가 컸다. 순위 싸움이 한창인 와중에 자리를 비우는 게 편치 않았는지, 김경문 감독은 8일 뒤 현장에 복귀했다.

3년 연속 우승에 도전하는 김태형(50) 두산 베어스 감독도 건강 상 이유로 더그아웃을 잠시 비웠었다. 8월 19일 수원 kt전이 끝난 후 복통을 호소한 김 감독은 게실염 판정을 받았다.

게실염은 대장벽에 염증이 생겨 바깥쪽으로 동그랗게 꽈리 모양으로 튀어나오는 질병을 의미하는데, 식습관이나 스트레스가 발병 원인이 될 수 있다. 당시 연승을 달리며 두산을 5위에서 2위로 끌어올렸지만 김 감독 역시 주위에 차마 꺼내지 못할 고민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시리즈에서 김태형 감독과 지략 대결을 펼치고 있는 김기태(48) KIA 타이거즈 감독도 올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팀은 줄곧 1위를 달렸지만, 선두를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 특히 불펜이 난조를 보인 후반기에는 눈 실핏줄이 터져 짙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모습을 자주 확인할 수 있었다. 흰머리도 부쩍 늘었다.

 

▲ 최천식 감독은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딱히 없다. 보는 눈이 많아 술도 조용히 마셔야 한다"며 "대학팀 감독이라고 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건 아니다. 성적을 뺀 모든 것에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사진=스포츠Q DB]

 

◆ "구단-감독은 비즈니스 관계, 쿨해져야"

이처럼 성적이 좋은 감독들도 저마다 심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기에, 스트레스와 지도자는 필수 불가결의 관계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신영철 전 감독은 지도자가 감독직에 대해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그나마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감독은 어차피 계약직입니다. 성적이 나쁘면 잘리는 건 당연한 거예요. 감독 스스로 구단과 비즈니스 관계에 놓여 있다고 인지해야 합니다. 저 역시 인천 대한항공 사령탑 시절에 시즌 도중에 경질됐어요. 하지만 당연하다고 여기며 받아들였죠. 비록 다시 프로팀 감독이 되는 게 쉽지 않지만, 지도자들 스스로 ‘쿨’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의 경질과 한 번의 재계약 불가 통보를 경험한 신영철 전 감독의 말이다.

 

▲ 신영철 전 감독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운동으로 땀을 뺐다"며 "여자 프로팀 감독들은 술과 담배로 풀 때가 많더라. 그러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사진=스포츠Q DB]

 

◆ '지도자 멘탈코치' 도입, 궁극적인 해결책 될 수 있을까

감독 스스로 마음을 편하게 먹는 것.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분명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정신적 건강에 대한 짐을 온전히 사령탑에게 지우는 건 가혹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대택(53) 국민대학교 체육학부 교수는 “감독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직업의 본질적인 면에서 생기는 것이기에 손댈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면서도 “직업적 속성 이상으로 받는다거나, 생계 등 지도자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문제까지 염려한다면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재 선수들의 정신적인 충격은 전문가의 손길로 치유되고 있다. 대한축구협회(KFA)가 최근 경기력 저하로 자신감이 떨어진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스포츠 심리 전문가 고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 10월 24일 울산 현대모비스전에서 김종규(왼쪽)에게 지시사항을 전달하고 있는 현주엽 창원 LG 감독. [사진=스포츠Q DB]

 

하지만 감독을 비롯한 코칭스태프의 멘탈을 치유할 전문가는 전무에 가깝다. 구단은 감독에게 선수의 멘탈 단련을 부탁하지만, 정작 감독의 마음을 돌볼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대택 교수는 “선수 바로 바깥에 감독과 코치의 영역이 있다. 이들이 직업적 영역인 경기에서 벗어난 뒤 정신적인 케어가 필요하다면 코칭스태프 전담 멘탈코치가 등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것이 지도자가 처한 상황을 모두 해결해 줄지는 미지수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도입될 것 같다”며 “다만 팀 구성 상 감독 전담 멘탈코치가 꼭 필요한지, 해외 사례는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감독들의 성적 스트레스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많은 지도자들이 성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밤잠을 설치고 있다. 해마다 유능한 사령탑들이 정신적으로 내몰리고 있는 상황. 전문가들은 “‘건강 사각지대’에 놓인 감독들을 돌볼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