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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김민재 뺨 때린(?) 김영권, 태도-실력 1년 만에 탈바꿈한 '그저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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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김민재 뺨 때린(?) 김영권, 태도-실력 1년 만에 탈바꿈한 '그저 빛'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8.09.08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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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주현희 기자] 파울루 벤투 한국 축구 대표팀 감독의 데뷔전. 5년만의 A매치 매진사례를 이룬 만큼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많은 관심이 따라붙었다. 그 중 하나가 대표팀 수비의 핵으로 거듭난 김영권(28·광저우 에버그란데)과 한국 축구 수비의 미래 김민재(22·전북 현대)의 경기 직후 대화 장면이었다.

김영권은 7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코스타리카와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장현수(FC도쿄), 김민재와 번갈아 호흡을 맞춰 한국의 2-0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다.

 

▲ 김영권이 7일 코스타리카와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에서 피치를 누비고 있다.

 

파트너를 바꿔가면서도 안정적인 수비를 펼친 김영권은 경기를 마친 뒤 김민재에게 다가갔고 예상치 못한 장면을 연출했다. 김민재의 뺨을 건드렸는데, 본인의 말대로라면 ‘격려’의 의미라고는 하지만 그 강도가 다소 강해보였다. 이 장면은 중계방송 카메라에 고스란히 잡혔고 경기 후 축구 커뮤니티 등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만한 상황이 있었다. 후반 24분 수비 진영에서 공을 잡은 김민재는 드리블을 치며 줄 곳을 찾다가 어이없는 패스 미스를 범했다. 뒤쪽에서 김영권이 버티고 있었지만 김민재는 무리한 패스로 위기를 자초했다. 김영권이 뒤에서 재빠르게 달려나와 몸을 날려 상대의 슛을 차단해내며 다행히 실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김영권은 후배에게 ‘사랑의 매’를 든 것이 이 때문이었느냐는 질문에 “아니 아니, 그러니까 뭐”라고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수고했다는 격려 차원의 행동이었다”고 수습했다.

조심스러웠던 김영권과는 달리 예상치 못한 공격(?)을 받은 김민재는 오히려 밝게 웃으며 김영권에게 변명을 하는 듯이 말을 했고 둘은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른 동료들과 함께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다소 짓궂기는 했지만 서로 워낙 친하고 순간적으로 집중력을 잃은 후배에게 선배가 할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김영권은 지나치게 조심스러워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했다. 이미 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경험했기 때문.

 

▲ 경기 후 김영권(오른쪽에서 3번째)이 김민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김민재는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뒤에도 웃으며 김영권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SBS 중계화면 캡처]

 

1년 전인 지난해 8월 31일 한국은 이란과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전을 치렀다. 조 2위를 확정짓지 못한 상황에서 단 2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홈경기이기는 했지만 상대가 조 1위 이란이었기에 부담이 컸다.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을 바라는 6만여 축구 팬들은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경기 전부터 응원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메울 정도였다. 한국은 0-0으로 비기며 승점 1을 챙기며 소기의 성과를 거뒀지만 유효슛을 하나도 날리지 못했고 수비에선 불안한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당시에도 김민재와 김영권이 짝을 이뤘는데 대표팀 데뷔전을 치른 김민재가 김영권의 실수를 수습하는 등 오히려 더 인상적인 활약을 보였다.

사태(?)는 경기 후 터졌다. 신태용 당시 감독으로부터 주장으로 선임된 뒤 첫 경기를 치른 김영권은 “경기장 안에서 워낙 관중 소리가 크다보니까 소통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고 말했다. 수비에서 소통을 강조하며 이 부분을 끊임없이 훈련했는데 동료들간 외침이 관중들의 응원 소리에 묻혔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들은 그의 발언에는 관중들을 탓하는 뉘앙스가 담겨 있지 않았다. 훈련한 부분이 잘 이뤄지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표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서툰 표현’은 대중의 분노를 샀다. 국가대표, 그것도 주장 완장을 달고 할만한 말은 아니었다는 게 중론이었다. 이후 김영권은 한동안 축구 팬들의 ‘욕받이’가 됐고 심리적으로도 크게 흔들렸다. 더불어 경기력도 떠어지며 월드컵 출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주장 완장 또한 기성용에게 다시 넘겼다.

 

▲ 김민재는 공격에도 적극적으로 가담하는 놀라운 활동량을 보였지만 수비에서 치명적인 위기를 자초할 수 있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러나 김민재의 예기치 못한 부상으로 월드컵에 참가하게 된 김영권은 180도 달라진 경기력으로 대중의 비판을 찬사로 바꿔냈다. 일부 축구 팬들은 이날 다소 논란이 있을 수도 있었던 그의 행동에 대해서도 오히려 단순한 해프닝으로 생각하거나 오히려 그 이유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그의 행동을 이해하려 했다.

오히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김영권이었다. 그만큼 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고 그를 통해 더욱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날 파트너를 바꿔가면서도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낸 그다. 전반엔 공격시에 김민재와 간격을 좌우로 넓히며 수비형 미드필더 기성용이 빌드업의 시발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움직였다. 역습에 대한 부담감이 컸지만 김영권은 문제없이 벤투 감독의 지시를 이행해 냈다.

아시안컵 등에서 상대 역습에 크게 당할 수도 있는 전략이 아니냐는 질문에는 “카운터 어택을 당했을 때 어떻게 수비를 해야 하는지도 잘 대비를 해야 한다. 능력 좋은 팀들엔 당할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을 최대한 보완해야 할 것”이라고 수비수로서 모범 답안을 내놨다.

경기 중 파트너가 바뀌는 어려움을 겪었음에도 “(장현수와 김민재의) 큰 차이는 없었다. 새 감독님이 왔고 전술도 처음 시행해보는 것이었기에 누가 들어오더라도 문제가 없었다”며 지난해 이란전 이후 2번째 호흡을 맞춘 김민재에 대해서도 “(월드컵 때) 부상 때문에 대표팀에 들어오지 못했는데 그 전부터 어떤 스타일인지 서로 알고 있었기에 경기 전 이야기를 하고 들어가서 큰 문제가 없었다”고 듬직한 베테랑의 면모를 보였다.

1년 전 수비 능력은 물론이고 태도에서도 아쉬움을 남겼던 그였기에 이러한 놀라운 변화는 축구 팬들에게 더 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김민재가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폼을 보여주고 있지만 월드컵 이후 축구 팬들은 김영권에게 더욱 큰 믿음을 보이고 있다. 이날 경기 후에도 그랬다.

흔히 스포츠에선 경기 내외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때 “실력으로 보답하겠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에 좋은 예가 바로 김영권이다. 놀랍게 반등한 실력에 한층 성숙해진 태도까지 보태 한국 축구 수비수의 본보기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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