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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백', 원작과 다른 영화만의 캐릭터 원동력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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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백', 원작과 다른 영화만의 캐릭터 원동력 [인터뷰Q]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10.11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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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후지모토 타츠키의 단편만화 '룩백'을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재해석해 원작 팬과 영화 팬 모두를 사로잡은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이 주요 장면의 연출 의도를 공개했다.

일본 개봉 당시 10억엔(한화 88억3370만원)을 벌어들이며 2주 연속 박스오피스 흥행 수입 1위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영화 '룩백'(감독 오시야마 키요타카)이 지난달 한국 개봉 후 뜨거운 반향을 일으키며 26만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했다. 개봉 한 달이 지난 지금도 N차 관람과 입소문을 통한 신규 관객을 모으고 있는바. 특히 감독의 유명세가 아닌 영화가 지닌 힘 그 자체로 한국 관객의 열렬한 사랑을 받아 눈길을 끌었다.

'룩백'은 만화로 연결된 두 소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교내에서 가장 만화를 잘 그린다고 평가받던 초등학생 후지노는 어느날 학교에 나오지 않는 은둔형 외톨이 쿄모토의 그림 실력을 보고 좌절한다. 이후 그림 연습에 매진하지만 좁혀지지 않는 실력 차이를 느끼고 결국 펜을 놓는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 후지노는 쿄모토의 졸업장을 대신 전달해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을 받는다. 그렇게 성사된 후지노와 쿄모토의 첫 만남. 후지노는 쿄모토로부터 후지노가 그리던 만화를 동경해 왔다는 고백을 듣고 "왜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냐"는 물음에 다시 펜을 잡는다. 이어 두 사람은 '후지노 쿄'라는 예명으로 함께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쿄모토는 후지노에게 꿈을 찾아주고, 후지노는 쿄모토를 세상으로 이끈다.

영화 ‘룩백‘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영화 ‘룩백‘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영화를 연출한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후지모토 타츠키 작가와 애니메이션 '체인소맨'으로 인연을 맺었다. 당시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애니메이터로서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의 디자인을 맡았고, 이후 2021년 '룩백'이 출간되면서 일본 제작사 에이벡스 픽쳐스로부터 장편 애니메이션 연출을 제안받았다.

그가 연출 제안에 단번에 '오케이' 사인을 보낸 것은 아니었다. '룩백'은 이미 단편만화 자체로 완성도가 높았고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았기 때문. 무엇보다 그동안 오리지널 작품을 연출해 온 감독으로서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상화한다는 것에 큰 부담감을 느꼈다. 그러나 결국 '룩백'의 이야기가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을 끌어들였다. 11일 스포츠Q와의 인터뷰를 진행한 그는 "원작을 읽으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영상화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평생 그림을 그리는 인생을 살아아 온 나와 궁합이 맞는 작품이었다"고 연출을 결심한 이유를 밝혔다.

동시에 전전긍긍하는 마음을 버릴 수 없었다. 그는 "연출을 확정하고 나서도 통과가 안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반 정도 있었다. 완성도 높은 작품을 영상화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순수하게 기쁜 마음으로 작업하기 어려웠다"고 고백하며 "영화가 완성된 후 이런 마음을 제작사에 털어놓았는데 아마 작가님께서 들으셨다면 쓴웃음을 짓지 않으셨을까"라고 이야기했다.

영화 ‘룩백‘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영화 ‘룩백‘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 117만 일본 관객, 26만 한국 관객 울린 '모두의 이야기'

영화는 후지노와 쿄모토 두 인물에게 자신의 삶을 대입하는 관객을 통해 더욱 풍부한 이야기로 거듭났다. 누군가는 후지노에게서 자신을 발견했고, 다른 누군가는 쿄모토를 바라보며 과거를 반추했다. 공감의 힘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것.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 역시 후지노에게서 과거의 오시야마 키요타를 찾았다고.

그는 "후지노가 쿄모토의 재능을 발견하고 좌절하는 장면이 공감됐다. 쿄모토의 재능이 알려지며 학급 학생들이 후지노의 그림은 별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과거의 제 모습과 겹치더라. 학창시절 그림이나 만화에 있어 좌절을 경험한 적은 없지만 게임이나 스포츠를 굉장히 좋아해서 더 잘하는 학생들이 나타날 때마다 '이 분야에서 나는 특별해질 수 없구나'하고 좌절감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어린 시절에는 제게 자극을 주는 존재가 없었어요. 저는 학급, 학교에서 그림을 제일 잘 그리는 학생이었고 후지노처럼 '내가 제일 잘 그린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찬 어린 시절을 보냈죠. 그러다 프로 세계에 입문하면서 크리에이티브한 사람들을 만나고 충격받았어요. 좌절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특별하진 않구나. 지고 싶지는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좋은 건 이 좌절에 납득할 만한 이유를 붙이는 지혜가 생긴다는 것이겠죠. '이 사람이 이런 걸 잘해? 그렇다면 나는 이 분야를 더 잘해'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게 돼요. 한편으로는 어른이 된 후 좌절감을 느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어린 시절에 겪었다면 후지노처럼 다시 일어날 수 있었을까 싶거든요."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후지노와 쿄모토가 함께 만화를 그리는 장면에서는 오시야마 감독의 현재가 담겼다. 그는 "애니메이션을 하면서 많은 파트너와 작업을 하기 시작했고 그들과 작품을 만든 청춘을 떠올렸다"고 이야기하며 "그래서 후지노와 쿄모토가 작업하는 컷을 원작보다 많이 넣었다. 원작 속 후지노의 원동력은 쿄모토의 리액션이지만, 영화에서는 둘의 창작 과정이 원동력이다. 두 사람이 창작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에 포커스를 뒀다"고 밝혔다.

"후지노의 인생에 있어서 쿄모토라는 존재는 어떤 힘을 가질까 생각해 봤어요. 만약 쿄모토의 응원과 지지가 후지노의 원동력이라면 쿄모토의 죽음과 동시에 후지노의 모든 것이 없어질 거예요. 하지만 후지노의 마음속에 쿄모토와 함께한 추억이 살아있다면 그것이 새로운 원동력을 발견해 나갈 거고, 쿄모토가 없는 후지노의 미래도 구원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 미야자키 하야오가 인정한 연출 감각

'룩백'이 원작에 기대지 않고 애니메이션 자체로 완성도를 가져갈 수 있었던 이유는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남다른 연출 해석 덕분이었다. 특히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음악과 후지노의 뒷모습은 영화관에 불이 전부 켜질 때까지 관객의 발을 잡아두는 강력한 여운을 남겼다.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테마송은 처음부터 가사를 붙이지 않으려고 했다. 작품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상호 효과를 일으켜서는 안 되기 때문에 나라무라 하루카 작곡가님께도 가사를 붙이지 말자는 의견을 냈다. 이 작품은 여러 레이어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관객의 해석을 방해하지 않으려면 가사가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대신 노래하는 목소리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떠한 언어도 아닌 그냥 노래로 들리는 목소리를 담았다. 노래를 힘 있게 표현하는 후보도 있었지만 의도한 바에는 가수 우라라(urara)가 적합했다. 의미 없는 노랫소리를 담는다는 의도에는 우라라의 목소리가 가장 매력적이었다. 곡의 멜로디는 작곡가님과의 미팅 후 처음으로 받아본 멜로디와 거의 유사하다. 완성곡에 가까운 좋은 멜로디를 주셔서 스무스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영화 ‘룩백‘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영화 ‘룩백‘ 스틸컷. [사진=메가박스중앙 제공]

많은 관객이 명장면으로 꼽은 부분은 후지노가 졸업식 날 쿄모토와 처음으로 만나 그에게 그림 실력을 인정받고, 감격과 벅참 등 여러 감정을 안은 채 빗속을 뛰는 장면이다. 이 장면 또한 인물대사 없이 격렬한 이미지와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음악만으로 완성했다. 원작에서 단 세 페이지, 단 네 컷으로 표현된 장면을 길게 풀어낸 것도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의 선택이었다.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원작을 읽었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다. 원작은 후지노가 쿄모토와 멀어지는 장면, 민가가 멀어지고 논밭이 나오는 장면, 빗속에서 달리는지 춤추는지 모를 포즈를 취하는 장면 세 개로 나뉜다. 영상화에 있어 이 장면을 잘해야 승부가 나겠구나 싶었다"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콘티 작업을 했다. 굉장히 많은 시간을 고민했고 실제 작업에 들어갔을 때도 수정을 각오하고 작업했다. 최종적으로는 처음 계획대로 완성했다"고 말했다.

해당 장면은 뮤지컬 영화 '사랑은 비를 타고'(1954)의 감독 겸 배우 진 켈리가 'Singing In The Rain'(싱잉 인 더 레인)을 부르며 우중 댄스를 펼치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았다.

"배경 미술 감독이 이 장면에 햇빛을 넣어 긍정적으로 표현하자고 제안했는데 그래선 안 된다고 했어요. 비가 내리는 날씨와 후지노의 감정이 대비돼야 극적으로 표현될 것이라고 생각했죠. 비를 맞고 돌아온 후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리는 장면도 의도적으로 방을 어둡게 연출했어요. '싱잉 인 더 레인'도 폭우 속에서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 기쁨이 온전히 표현되지 않았을 거예요."

여기에 "후지노가 빗속을 달리던 때는 초등학교 졸업 시즌인 3월이다. 그때의 아티카현은 날씨가 춥다. 비가 아주 차가웠을 것"이라며 "아마 후지노는 그림을 그린 후 감기로 쓰러지지 않았을까"라고 자신만의 비하인드를 귀띔했다. 더불어 후지노가 전신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얼굴에 온갖 힘을 주며 춤추는 것에 대해서는 "극에 달한 기쁨을 표현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 '룩백'과 닮은 오시야마 키요타카의 자세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 [사진=MOVIE WALKER 제공]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 [사진=MOVIE WALKER 제공]

끝으로 오시야마 키요타가 감독은 애니메이터에게 필요한 자세로 "멈추지 않는 것"을 강조했다. 이 대답은 '룩백'의 성인이 된 후지노가 오랜 시간 이어진 쿄모토의 애정을 확인하고, 그의 뜻을 이어 다시 펜을 잡는 장면과 겹쳤다.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애니메이터는 장시간 다량의 그림을 그려내야 하는 직업이다. 긴 작업 시간 동안 동력을 유지해야 한다. 인생의 다른 즐거움을 뒤로 하고 그림을 그려나가는 고행을 택한 사람들"이라며 "애니메이션은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완성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상황에도 그려나가야만 한다. 재능보다 중간에 그만두지 않는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오시야마 키요타카 감독은 오는 12일부터 13일까지 내한 일정을 가지며 한국 관객과 관객과의 대화(GV), 사인회 등으로 만난다. '룩백'은 전국 메가박스에서 절찬 상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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