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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이만기 강호동 최홍만, 민속씨름의 몰락과 부활 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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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이만기 강호동 최홍만, 민속씨름의 몰락과 부활 찬가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7.01.27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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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민기홍·안호근 기자] # 광경 하나. 모처럼 씨름이 화제가 됐다. 예능 덕분이다. 지난 15일 JTBC에서 방영된 ‘아는형님’에서 가수 비가 신장 207㎝의 서장훈은 물론 김희철 민경훈 김영철 이상민 이수근까지 고정 게스트를 줄줄이 물리친 덕이다. 비는 천하장사 5회, 백두장사 7회, 단체전 무패에 빛나는 천하장사 강호동을 상대로 선전했다. 이 영상은 국내 2대 포털사이트를 통틀어 40만 건이 조회됐다.

# 광경 둘. 지난 24일 충남 예산군 윤봉길체육관에서 2017 IBK기업은행 설날장사씨름대회가 막을 올렸다. 김성용(제주특별자치도)이 태백장사(80kg 이하), 이승호(수원시청)가 금강장사(90kg 이하)에 올랐지만 이들을 인지하는 스포츠팬은 극히 드물다. ‘모래판의 꽃’ 백두급(150kg 이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장성복(양평군청), 손명호(의성군청), 정경진(울산동구청)을 알아보고 사인을 요청하는 이는 과연 몇이나 될까.

▲ 2017 설날 금강장사 이승호. 스포츠팬 중 그를 알아보는 이는 극히 드물다. [사진=통합씨름협회 제공]

1983년 4월 중순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제1회 천하장사 씨름대회의 최고 시청률은 무려 61%였다. 1985년 3월 18일 제6회 천하장사 씨름대회 결승전에서 이만기와 이준희가 격돌할 때 시청률은 68%까지 치솟았다. 4년에 한번 꼴로 거행되는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경기가 황금시간대에 편성됐을 때나 나올 수 있는 수치다.

설날과 추석 등 명절에는 민속씨름이 주요 볼거리여서 온 가족이 TV 앞으로 몰려들었고 웬만한 스포츠팬이라면 천하장사가 누구라는 것을 다 알 정도로 뜨거운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지금은 애석하게도 잘 나가는 씨름선수조차 아는 이들이 많지 않다.

이번 설날에도 씨름대회가 열리고 있지만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한때 8구단 체제로 운영됐던 민속씨름은 왜, 언제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 IMF 직격탄, 씨름 몰락의 과정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가 결정적이었다. 최고령(36세) 천하장사 기록 보유자인 황규연 전 현대삼호중공업 코끼리 감독은 “세경진흥건설이 어려워져 현대중공업으로 옮겼다. 트레이드로 삼익 파이낸스로 갔는데 또 해체돼 신창건설 창단멤버가 됐다. 역시 해체돼 2006년 7월 현대삼호중공업에 입단했다”고 현역 시절을 회상했다. 안정적인 선수생활이 어려웠던 셈이다.

2004년 12월 LG투자증권씨름단(럭키금성)이 사라지면서 급격히 판이 위축됐다. 최홍만이 이종격투기(K-1) 전업을 선언했고 이태현(프라이드), 김영현(K-1)마저 이종격투기로 무대를 옮겨 파장이 일었다. 2005년 7월 신창건설마저 무너지자 프로씨름 주관단체 한국씨름연맹이 설 자리를 잃었다. 유일한 프로팀이던 현대삼호중공업도 이달 초 영암군청으로 선수를 인계했다.

덩치 크고 힘을 앞세운 선수들이 모래판을 지배하면서 기술씨름이 자취를 감춘 걸 몰락의 이유로 보는 시각도 있다. 과거 이만기처럼 날렵하고 근육질의 '몸짱'이 아니라 신장 200㎝, 몸무게 150㎏이 넘는 거구가 밀어치기로 상대를 제압하는 ‘뻔한’ 결과를 보면서 흥미를 잃었다는 씨름 팬들이 적지 않다. 샅바 싸움이 너무 길어 ‘죽은 시간’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토록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는데도 컨트롤 타워는 하나가 되지 못했다.

2006년 한국씨름연맹은 "씨름을 살려보겠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던 이만기 인제대 교수에게 영구제명 징계를 내렸다. 2015년 6월 대한씨름협회 회장 선거 때는 임원 보직을 두고 파벌이 갈렸다. 한 씨름 원로는 “단독 후보 당선만은 막겠다”며 ‘분신 소동’을 벌였다. 결국 대한씨름협회는 지난해 1월 대한체육회 관리단체로 지정됐다.

◆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 박진감 더한 반전의 씨름

민속씨름은 부끄러운 과거를 뒤로 하고 부활을 향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2012년 씨름진흥법과 씨름의 날(음력 5월 5일, 단오) 제정을 시작으로 지난해 4월 3년여의 준비 끝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씨름을 등재 신청했다. 심사는 2018년이다.

지난해 8월에는 씨름인 출신 박팔용 회장을 선출, 새 집행부를 꾸렸다. 한국씨름연맹 경기운영 본부장을 역임했던 박 신임회장은 “씨름인이 주인이 되는 통합씨름협회가 되도록 하겠다”며 “전통 스포츠의 바탕 위에 현대적인 감각과 재미를 가미한 새 시대를 열겠다”고 다짐했다.

▲ 2010년 KBS 예능 '1박2일'에서 세기의 재대결을 펼친 왕년의 천하장사 강호동(왼쪽)과 이만기. [사진=KBS '1박2일 캡처]

지난 4일에는 국가무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는 쾌거를 더했다. 문화재청은 “씨름판의 구성, 씨름 기술에 한국의 독자성과 표현미가 남아 있다”며 “씨름은 명확한 역사성이 확인되는 민속놀이”라고 씨름을 무형문화재로 택한 배경을 밝혔다.

설날 태백장사 김성용은 “최근 씨름이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고 반색하며 ”저도 씨름을 대표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앞으로 멋진 기술을 보여주겠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씨름이 침체된 원인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씨름인들은 “기술, 전략의 비중을 높여 박진감을 더하겠다”며 씨름 부활을 위한 당찬 각오를 다지고 있다.

근육질 청년들이 화려한 테크닉, 영리한 몸놀림으로 반전의 맛을 줄 터다. 설날장사 백두급 토너먼트는 오는 29일 펼쳐진다. 한때 씨름을 즐겨보던 팬들의 관심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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