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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스키점프 1세대 최흥철, '국가대표' 22년의 눈부신 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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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스키점프 1세대 최흥철, '국가대표' 22년의 눈부신 비상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1.25 19: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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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 실제 모델, 평창 FIS컵 15차 대회 우승...올림픽 최다 6회 출전 타이 눈앞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2009년 여름. 848만 명의 관객들이 스키점프 선수들의 비상에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영화 ‘국가대표’의 실제 주인공은 7년이 지난 지금도 태극마크를 달고선 하늘을 날아오르고 있다.

한국 스키점프가 비상했다. 최흥철(35·하이원리조트)은 지난 23일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 스키점프 센터에서 열린 2016 국제스키연맹(FIS)컵 스키점프 15차 대회 남자 노멀힐(K-98) 개인전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이 2년여 앞으로 다가왔다. 잊었던 스키점프를 다시 주목할 때다.

◆ 국가대표 22년차, '스키점프 1세대'의 눈물겨운 성장기 

영화 한편이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메달을 아무리 따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던, 무늬만 국가대표였던 최흥철의 인생은 김동욱이 연기한 영화로 인해 인생이 바뀌었다. 덕분에 하이원리조트라는 보금자리가 생겼고, 평창 올림픽을 위해 생긴 스키점프대에서 훈련할 수 있게 됐다.

최흥철은 전북 무주 설천초 재학 시절이던 1991년, 스키점프에 입문했다. 1997년 무주 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를 앞두고 1990년 개장한 무주리조트에 스키점프대가 설치돼 잠시 붐이 일었다. 1993년 설천중에 팀이 창단되며 본격적으로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그는 5m와 15m 점프대에서 기본기를 익혔다. 방학을 이용해 체코에서 온 코치들로부터 2~3주씩 트레이닝을 받았다. 얼굴, 목, 무릎, 발목 등 안 다친 곳이 없었다. 그렇게 ‘스키점프 1세대’가 됐다. 1995년부터 태극마크를 달았다. 국가대표만 22년째다.

2001년 폴란드 자코파네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인전 은메달을 시작으로 최흥철은 2002년 독일 콘티넬털컵 금메달,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 2007년 토리노 동계유니버시아드 단체전 은메달, 2009년 하얼빈 동계유니버시아드 단체전 금메달,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단체전 동메달 등 꾸준한 성과를 올렸다.

해외 전지훈련을 떠나는 비행기 티켓을 빚내 구입하고 막노동, 인형 탈 아르바이트 등을 하면서 걸어온 고난의 길이다. 최서우, 김현기, 강칠구(이상 하이원리조트) 등 20년간 동고동락해온 동생들을 다독이며 최흥철은 한국 스키점프의 자존심으로 살아왔다.

◆ 올림픽 최다 출전기록 눈앞, 평창은 '최흥철 키즈'의 시발점

그러나 한 단계 높은 올림픽에서만큼은 눈에 띄지 못했다. 그래서 대중적 인지도가 약하다. 올림픽 최고 성적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에서 기록한 단체전 8위. 한국의 설상 종목 역대 최고성적이지만 여전히 성에 차지 않는다.

평창 올림픽은 최흥철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1998년 일본 나가노를 시작으로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 2010년 캐나다 밴쿠버, 2014년 러시아 소치 대회에 이어 자신의 6번째 올림픽을 맞는다. 이는 스피드스케이팅의 이규혁(은퇴)이 가진 올림픽 최다 출전 타이기록이다.

동계종목에서 연이어 반가운 소식이 들리고 있다. 새해 들어 봅슬레이의 원윤종-서영우, 스켈레톤의 윤성빈, 컬링의 강원도청 등 다양한 동계종목들이 약진하고 있다.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에만 의존했던 예전의 한국이 아니다. 최흥철이 스키점프란 종목의 명운을 쥐고 있다.

2014년 11월 대한스키협회 수장이 된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은 “설상 종목의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상태. 지난 22일에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어린 유망주를 대상으로 한 스키점프 키즈스쿨을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최흥철 키즈’ 탄생의 시발점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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