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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눈물 닦고 맞이한 컬스데이의 '새로운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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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스페셜] 눈물 닦고 맞이한 컬스데이의 '새로운 오늘'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4.21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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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되찾은 경기도청 여자컬링팀, 시련 딛고 1년 만에 다시 쓴 빙판의 상춘별곡

[300자 Tip!] 지난해 이맘때, 스포츠 팬들은 한 팀에 적지 않게 열광했다. 여자선수 넷이 원반처럼 생긴, 스톤이라 부르는 큰 '돌덩이'를 빙판 위에 미끄러지듯 던지고 두 선수가 빙판 위를 열심히 닦는 생소한 경기였다. 그러나 이들의 선전에 팬들은 환호했고 '컬스데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바로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이었다. 하지만 화려했던 스포트라이트는 잠깐. 내홍과 갈등을 겪는 바람에 국가대표 선발전인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는 출전도 못해 대표팀의 자격을 반납해야 했다. 그러나 절치부심 끝에 내셔널 타이틀을 다시 거머쥐며 대표팀 지위를 되찾았다. 어제의 슬픔은 훨훨 날려버리고 활짝 새 봄을 맞았다. 얼음판에서 상춘별곡을 쓰며.

▲ 경기도청 설예은(왼쪽부터), 김은지, 엄민지, 김지선, 염윤정, 이슬비가 20일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컬링선수권 시상식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1등을 의미하는 손가락 표시를 하고 있다.

[인천=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지난해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처럼 극과 극을 달린 경우가 또 있을까. 소치 동계올림픽과 세계컬링선수권에서 연속 선전하면서 국내 스포츠 팬들에게 컬링이라는 새로운 종목의 매력을 선사했다. 내심 메달권 진입까지 노렸던 소치 올림픽에서는 아쉽게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강호들과 대등한 경기를 펼치며 4강에 올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감독과 코치의 폭언과 성희롱, 기부 강요 등의 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문이 일었다. 선수들은 집단 사표를 냈고 진상 조사 결과 감독과 코치는 중징계를 받고 팀을 떠나갔다. 선수들은 다시 팀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팀은 만신창이가 됐다. 코칭스태프가 없는 상태에서 훈련을 하기가 힘들었다. 맏언니 신미성(37)은 나이가 적지 않아 고심 끝에 은퇴했다. 스킵(주장) 김지선(28)은 대표팀 선발무대인 한국컬링선수권대회를 준비하던 중 임신을 확인하고는 잠시 팀을 떠났다. 다섯 선수 가운데 둘이 빠져나가면서 선수권 대회를 치러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하지만 경기도청은 무너지지 않았다. 새로운 선수를 영입했고 김지선도 출산 뒤 복귀했다. 코칭스태프도 새롭게 구성했다. 그리고 20일 인천선학국제빙상장에서 끝난 2015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서 경북체육회와 숭실대를 잇따라 물리치고 8전 전승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 대표팀의 지위를 되찾았다.

▲ 경기도청 이슬비(가운데)가 20일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컬링선수권 여자부 결승전에서 조심스럽게 스톤을 던지고 있다.

◆ 흐트러졌던 팀워크 문제, 대화와 이해하는 마음으로 풀다

현재 세컨을 맡고 있는 엄민지(24)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면서 감개무량한 표정을 지었다. 그만큼 지난 1년은 그에게 힘든 나날이었다.

"좋지 않은 일 때문에 선수들이 집단 사표를 내고 코칭스태프가 징계를 받는 과정에서 힘든 것을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해요. 게다가 일이 좀 해결됐다 싶었더니 맏언니가 은퇴하고 (김)지선이 언니까지 임신으로 전력에서 빠져나가면서 팀에는 3명밖에 남지 않았어요. 국가대표 선발전인 한국컬링선수권에는 출전조차 하지 못했어요. 그래서인지 이번에 대회에 복귀해 정상을 탈환하고 국가대표에 복귀한 것이 더욱 감격스러운 것 같아요."

지난해 내홍을 겪은 뒤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은 한동안 지도자 없이 훈련해야만 했다. 일은 해결됐지만 소치 동계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서 동고동락했던 두 베테랑이 전력에서 빠져나가 상대적으로 박탈감마저도 느껴졌다. 힘든 나날이었다. 성신여대에서 뛰었던 염윤정(27)을 데려와 팀을 재구성했다.

"팀워크를 다시 처음부터 다지면서 대화를 많이 했어요. 어떤 점이 좋았고 앞으로 어떻게 헤쳐나갈지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했어요. 그 결과 사이도 돈독해지고 팀워크도 맞아들어갔죠."

문제는 코칭스태프를 다시 구성하는 것이었다. 경기도청 선수들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지만 감독과 코치에게 대항한 선수라는 꼬리표가 알게모르게 따라다녔고 팀을 맡으려는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의정부고를 맡았던 정재석(42) 감독과 신동호(38) 코치가 새로운 코칭스태프로 합류했다.

▲ 경기도체육회 남자컬링팀 선수로도 활약하는 경기도청 신동호 코치(왼쪽)와 엄민지(오른쪽)가 20일 선학국제빙상장에서 열린 한국컬링선수권 시상식에서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특히 신동호 코치는 아직까지 경기도컬링협회 선수로 활동하고 있어 경기도청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면서 지도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신동호 코치도 대화가 팀워크를 다지고 사이를 돈독하게 만드는데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선수들이 너무 힘든 시기를 겪었잖아요. 저도 현역 선수로도 뛰고 있기 때문에 항상 선수들의 고충이 뭔지 귀를 기울이려고 했어요. 현재 힘든 것이 무엇인지, 필요한 것은 없는지에 대해 항상 상담과 대화를 통해 묻고 들어줬죠. 제일 좋았던 것은 선수들이 마음을 열고 먼저 다가와서 필요한 것을 요구했던 것이예요. 제 판단을 통해 선수들에게 필요한 것을 들어줬죠. 제가 이래라 저래라하기보다 선수들이 편하게 훈련할 수 있도록, 스스로 열심히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데 노력했어요."

포지션을 다시 처음부터 정하는 것도 문제였다. 스킵 김지선이 빠져나가면서 김은지(25)가 새로운 주장이 됐고 엄민지가 세컨을 맡았다. 새롭게 들어온 염윤정이 리드를 맡고 이슬비(27)가 서드를 맡았다.

소치 멤버 가운데 한 명의 얼굴만 바뀌었을 뿐이지만 신동호 코치는 포지션이 바뀌었기 때문에 완전히 새로운 팀이 됐다는 표현을 썼다. 소치 올림픽 당시 김지선이 스킵을 봤고 이슬비가 리드를 맡았다. 맏언니 신미성이 세컨, 현재 스킵인 김은지가 서드였다. 엄민지는 핍스(후보)였다.

"컬링의 특성상 포지션이 바뀌면 이전과 전혀 다른 팀이 됐다고 봐야 해요. 한 선수가 들어오기만 해도 새로운 팀이 되는데 포지션까지 바뀌었다면 더욱 말할 나위가 없죠. 결국 조직력부터 다지는 것이 가장 시급했어요."

▲ 경기도청 이슬비(왼쪽)와 엄민지가 20일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컬링선수권 여자부 결승전에서 열심히 빙판을 닦고 있다.

◆ 눈물은 깨끗하게 닦고 이젠 빙판만 닦는다, 세계선수권 목표는 우승

눈물은 닦았으니 이제 빙판을 힘차게 닦을 차례였다. 내홍을 겪고 새롭게 팀을 구성한지 5개월만인 지난해 9월 경북 의성컬링센터에서 열렸던 회장배 전국컬링대회는 그들의 복귀전이었다. 엄민지는 시즌을 준비하는 5개월이 자신이 컬링을 하는 동안 '가장 미쳐있던 때'라고 말했다.

"이를 악물고 훈련했어요. 정말 한마음 한뜻으로 컬링에만 미쳐있었던 것 같아요. 자나깨나 컬링에만 매진했어요. 체력훈련도 열심히 하고 밤늦게까지 빙판을 쓸고 닦으며 호흡을 맞춰나갔죠. 회장배는 우리의 복귀전이었어요. 복귀전이다보니 많이 떨렸어요. 하지만 공백이 있었으니 경기력에도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말은 정말 듣기 싫었어요. 한동안 대회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경기력이나 경기감각은 전혀 문제가 없는 선수들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렇게 이를 악물고 하니 복귀전에서 정상에 오를 수 있었어요."

또 경기도청은 경북도지사배에서도 준우승을 차지하며 대표 선발전인 한국컬링선수권 출전에 필요한 포인트를 넉넉하게 벌어놨다. 그러나 지난 2월 동계체전 예선에서 라이벌 경북도체육회에 5-6으로 아쉽게 지면서 5위로 밀렸다. 우승까지 바라봤던 경기도청 선수들은 다시 한번 위기감에 빠져들었지만 마음을 다잡았다. 이에 대해 이슬비는 한국컬링선수권을 앞두고 오히려 좋은 보약이 됐었다고 밝혔다.

"동계체전에서 진 것은 옛 일로 접어뒀어요. 열심히 훈련했지만 그만큼 부족했기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고 반성했죠. 더 이를 악물고 지난 두 달 동안 훈련에만 매진했어요. 컬링에만 미치는 계기가 됐어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준비하고 문제점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훈련을 진행헀어요."

▲ 경기도청 염윤정(왼쪽부터), 김지선, 신동호 코치, 이슬비, 엄민지, 설예은, 김은지가 20일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컬링선수권 시상식에서 금메달과 트로피, 상장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 사이 김지선도 복귀했다. 김지선은 이제 경기도청의 맏언니로 후배들을 이끌고 있다. 출산한지 5개월이 지나 컨디션이 완전치 않은 탓에 지금은 핍스로 뛴다.

"몸을 추스리는 것이 생각보다 약간 더디긴 하지만 몸은 많이 좋아졌어요. 그런데 이제 맏언니의 역할, 팀 기둥의 책임이 제게 돌아왔네요. 제가 아직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다보니 동생들을 옆에서 지원하는데 전력을 다했어요. 무엇보다도 맏언니 역할을 하면서 '(신)미성 언니가 정말 힘들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0일 결승에서 숭실대를 꺾고 한국컬링선수권 정상을 차지하면서 국가대표의 지위까지 되찾은 경기도청의 다음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컬링선수권대회(시기 미정) 우승이다. 이 대회에서 우승해야만 내년 세계컬링선수권 출전 자격이 주어진다.

엄민지는 "이마트배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아시아-대평양 대회도 함께 준비하려고 해요. 일본, 중국과 3강 구도를 형성하겠지만 당연히 우리의 목표는 우승"이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김지선도 "이제 다음 목표는 아시아-태평양 대회다. 이 대회에서 성적을 올려야만 세계선수권에 나갈 수 있다. 내년 세계선수권을 통해 지난해 따지 못했던 메달을 차지하는 것이 2015~2016 시즌의 목표"라고 밝혔다.

신동호 코치도 "중국이나 일본 모두 경험이 풍부해 부담이 되는 상대지만 우리에게는 정신력이 있다. 정신력은 그 어떤 팀과 비교해도 경쟁력이 있기 때문에 멘탈 스포츠인 컬링에서 큰 효과를 발휘할 것"이라며 "내년 세계선수권에서도 기왕이면 금메달을 따고 싶다. 스위스나 스웨덴이 부담되는 상대이긴 하지만 전력차는 크다고 볼 수 없다. 세계선수권을 통해 여자 컬링도 세계에서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 경기도청 선수들이 20일 인천 선학국제빙상경기장에서 열린 한국컬링선수권 여자부 결승전에서 승리를 확정지은 뒤 한데 모여 기쁨을 표시하고 있다.

'눈물짓지마 새로운 오늘을 맞이할 준비를 해봐 / 외로운 날들이여 모두 다 안녕 / 내 마음속에 눈물들도 이제는 안녕 / 어제의 너는 바람을 타고 멀리 / 후회도 없이 미련없이 날아가 굿바이…(이하 중략)'

경기도청 여자 컬링팀의 지난 1년 와신상담 스토리를 들으니 왠지 가수 박혜경의 '안녕' 노래를 듣고 싶어졌다. 가사의 내용과 이들의 현재 상황이 절묘하게 오버랩됐다.

[취재후기] 경기도청은 국가대표가 되면서 대한체육회 해외우수지도자 초청 사업을 통해 세계적인 수준의 지도를 받는 등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대비해 경기력을 끌어올릴 기회를 얻게 됐다. 경기도청은 동계유니버시아드와 세계선수권, 그리고 소치 올림픽까지 출전하며 컬링에서 가장 중요한 경험을 풍부하게 쌓았다. 평창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가장 유력한 국가대표팀 후보다. 그러나 경기도청이 훈련할 수 있는 컬링전용경기장이 부족하다. 동두천에 경기장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숙소인 수원에서 거리가 너무 멀어 이용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들의 앞에는 지난 과거의 아픔은 없을 것이다. 이제 굴곡 없이, 그 어떠한 장애물도 없이 평창까지 직행하기를 기대한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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