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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영화]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시간 '스틸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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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이 영화] 무채색으로 변해가는 시간 '스틸 앨리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04 1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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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스틸 앨리스’는 할리우드 여배우 줄리안 무어에게 꿈에도 그리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작품으로 화제를 뿌렸다. 이로써 무어는 여배우로서 베니스, 베를린, 칸, 아카데미를 모두 제패한 그랜드슬램 대위업을 이루게 됐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타이틀이 아니더라도 ‘스틸 앨리스’는 순도가 높은 수작이다. 루게릭병을 앓는 중에도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고 리처드 글랫저 감독의 유작은 유복한 삶을 살던 중년여성 앨리스가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는 이야기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아 노년부터 젊은 세대 그리고 가족관객이 함께 관람하기에 최적인 영화다. 알츠하이머라는 질병을 통해 짚어낸 인간의 존엄성, 가족애가 쉬 사라지지 않는 여운과 함께 먹먹한 감동을 자아내기 때문이다.

 

세 아이의 든든한 엄마이자 사랑스러운 아내, 명문 컬럼비아대의 존경받는 언어학과 교수로서 행복한 삶을 살던 앨리스는 50세 생일을 앞두고 신체 이상을 느낀다. 병원 진단 결과 조발성 알츠하이머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해를 넘기며 상태는 날로 악화된다. 행복했던 추억,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모두 잊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소중한 시간 속에서 온전한 자신으로 남기 위해 당당히 삶에 맞서기로 결심한다. 암묵적으로 그녀를 외면하고 한숨만 짓던 가족들도 점차 앨리스의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스틸 앨리스’의 공동 각본가이자 연출을 맡은 리처드 글랫저 감독은 2011년 초 발음장애로 병원을 찾았다가 루게릭병을 선고받은 이후 리사 제노바의 소설 ‘스틸 앨리스’를 접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이 느끼는 두려움과 고독을 이해하게 되면서 워시 웨스트모어랜드 감독과 함께 영화로 만들 것을 결심했다.

이후 프리 프로덕션 단계부터 수족을 움직일 수 없고, 스스로 먹거나 옷 입는 것조차 불가능했음에도 현장에 나와 작업에 참여했다. 더 이상 말을 못하게 되자 아이패드 음성 응용 프로그램을 통해 끊임없이 배우들과 소통하며 열정적으로 임했다.

‘스틸 앨리스’는 기존 알츠하이머 소재 영화들과 달리 주인공과 주변인의 신파를 걷어낸다. 평생 언어를 연구해오던 학자가 단어를 상실해가는 아이러니가 충분히 드라마틱하다. 자신이 이룩한 눈부신 업적, 소통의 수단이던 언어를 잃을 위기에 직면한 앨리스의 절망과 두려움은 여과장치 없이 객석으로 곧장 전달돼 온다.

특히 실제 병을 앓고 있는 글랫저 감독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알츠하이머와 환자에 대한 접근법은 상투성에서 벗어나게 하는 위력을 발휘한다. 두 감독은 관객이 알츠하이머를 경험하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해 모든 장면에 줄리안 무어를 등장시켰을 뿐 아니라 카메라 워크를 앨리스 관점에서 진행해 그녀의 시선에서 다른 인물들을 바라보고 모두가 그녀의 세상에 편입될 수 있도록 연출했다.

또한 알츠하이머 진행 단계를 여러 과정으로 세밀하게 나눠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 의상은 물론 작은 행동의 변화부터 대사의 뉘앙스까지 신경 썼다.

 

진정성 넘치는 연출을 온몸으로 받아들인 줄리안 무어의 연기는 실로 위대하다. UCLA 특강에서 보여주는 석학의 면모부터 집안 화장실을 기억하지 못해 소변을 바지에 저려버리는 비참한 상황, 알츠하이머 협회에서의 더듬거리는 강연에 이르기까지 기억을 잃어가며 돌출하는 여러 자아를 절제된 내면연기로 보듬어 안는다.

흔히 ‘수상감 연기’라고 불리는 격정적인 연기를 하지 않고서도 관객의 감정에 격랑을 일으켜 버린다. 그녀의 기품 넘치는 연기로 인해 환자들이 간직한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이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절감하게 된다.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주는 남편 존 역 알렉 볼드윈을 비롯해 엄마의 기대를 저버린 채 연극배우로 살아가는 독립적인 막내딸 리디아 역 크리스틴 스튜어트, 엄마를 닮아 명석한 변호사인 장녀 애나 역 케이트 보스워스의 무너져가는 앨리스를 바라보는 복합적인 심경의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

“전 고통스럽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일부가 되기 위해, 예전의 나로 남아 있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입니다” ​“기억은 사라져도 나는 여전히 살아갈 겁니다” ‘지금이 내가 나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 거야“와 같은 대사들은 삶을 깊숙이 통찰하게 해준다.

지난 4월29일 개봉한 ‘스틸 앨리스’는 개봉 첫날 이후 입소문에 힘입어 다양성영화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3일 현재 109개 스크린에서 3만7594명의 관객(전체 박스오피스 10위)을 모았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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