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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돌린 키움팬, 어두웠던 이적시장 돌아보니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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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 돌린 키움팬, 어두웠던 이적시장 돌아보니 [프로야구]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1.12.31 09: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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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지금까지 많은 영웅들을 보냈지만 우리에게도 마지막까지 함께 할 히어로가 필요했다.”

키움 히어로즈 팬들이 분노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박병호(35)마저 지키지 못한 구단 운영에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듯하다.

대형 계약이 쏟아진 2022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박병호의 KT 위즈행이었다. 키움 팬들의 분노는 시나브로 쌓여가고 있었다.

박병호를 잃은 키움 히어로즈 팬들이 트럭시위 등으로 성난 민심을 표출하고 있다. [사진=스포츠Q DB]

 

히어로즈의 탄생 배경부터 가시밭길이 예고될 수밖에 없었다. 2008년 현대 유니콘스가 재정난으로 해체한 뒤 히어로즈는 새 구단으로 등장했다. KBO 최초 네이밍 스폰서 방식을 택했다. 그만큼 자금 수급이 어려워 선수 이탈은 필연적이었다.

창단 초기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선수들을 트레이드했다. 주축 투수였던 장원삼, 마일영(이상 은퇴)과 이현승(두산 베어스), 이택근(은퇴), 황재균(KT 위즈) 등을 줄줄이 잃었고 팬들은 팀 기둥이 뿌리째 뽑히는 것 같은 참담한 심정을 느껴야 했다. 당시 많은 팬이 이탈하기도 했다. 훗날 트레이드 과정에서 뒷돈을 받은 것까지 밝혀지며 더 비판을 키우기도 했다.

어느 정도 구단 운영에 안정을 찾은 히어로즈는 팀을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2011년 트레이드를 통해 당시 LG 트윈스에서 만년 기대주로 불리던 박병호를 데려온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박병호와 강정호 등이 성장하고 꾸준히 유망주를 배출해내며 2013년 이후론 가을야구 단골손님으로 등극했다. 2014년과 2019년엔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했다.

그러나 팬들이 느끼기에 구단의 운영 방향은 트레이드로 자금 확보에 나섰던 과거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았다. 박병호, 강정호, 김하성 등이 미국으로 떠나며 많은 돈을 구단에 안겨줬음에도 김민성(LG), 김상수(SSG 랜더스), 유한준, 손승락(이상 은퇴) 등을 지키지 못했다. 올 시즌엔 프로야구 최초 200안타를 대기록을 이루며 ‘교수님’으로 불리던 서건창을 LG로 트레이드시키기도 했다.

가뜩이나 사기와 배임 혐의 등으로 옥살이를 하고 있는 이장석 구단주를 비롯해 지난해 팬 사찰, 허민 이사회 의장의 갑질 논란 등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히어로즈다. 각종 악재 속 팬들은 떠나갔고 비인기구단이라는 오명도 썼지만 이런 가운데서도 선수들만 바라보며 팬심을 지키던 팬들도 적지 않았다.

박병호는 3년 총액 30억 원에 KT와 FA 계약을 맺었다. 스스로도, 팬들에게도 모두 짙은 아쉬움이 남았다. [사진=KT 위즈 제공]

 

박병호마저 KT에 떠나보내자 민심은 폭발했다. 그야말로 키움의 상징과 같았던 박병호였기에 팬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2011년 트레이드로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은 박병호는 이후 승승장구하며 홈런왕 5회, 리그 MVP 2회, 골든글러브 5회 수상 등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거포로 자리매김했다.

워크에식(직업 윤리 및 정신)이 뛰어난 선수로 동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최근 두 시즌 에이징 커브(노쇠화로 인한 실력 저하)를 의심케 하는 하락세를 겪기도 했지만 여전히 박병호는 키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그러나 안일한 태도였을까. 박병호를 지키지 못했다. 박병호는 직전 시즌 연봉 15억 원의 고액 연봉자로 비록 C등급으로 분류돼 보상선수에 대한 부담은 없었지만 그를 데려가기 위해선 22억5000만 원의 보상금을 추가 지출해야 했다. 이러한 안전장치 때문인지 키움은 협상에 적극적으로 달려들지 않았고 FA 시장 개장 직후부터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던 KT에 결국 3년 총액 30억 원에 팀 최고 스타를 내주고 말았다.

야구 커뮤니티 등을 통해 팬들의 분노를 느낄 수 있다. 한 팬은 박병호의 유니폼을 찢은 사진을 올리며 키움과 ‘손절’을 선언했다. 뜻을 모아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키움 히어로즈 사무실이 있는 고척스카이돔엔 조화를 보냈고 키움증권 본사 앞에 트럭을 보내기도 했다.

팬들은 트럭 전광판에 “지금까지 많은 영웅들을 보냈지만 우리에게도 마지막까지 함께 할 히어로가 필요했다”, “잘 나갈 땐 포스팅비 단물빨고 나이드니 찬밥 신세, 이것이 히어로즈의 베테랑을 대하는 자세”, “팬들만 히어로즈의 심장 박병호를 기억하는가”, “히어로즈의 팬들은 언제까지 영웅의 은퇴식을 원정석에서 지켜봐야 하는가”, “물심양면 지원해준 스폰서에게 부끄럽지도 않은가! 키움증권 김익래 회장님 지금이 손절 타이밍입니다”, “키움히어로즈구단 범죄자 영입엔 적극적, 프랜차이즈 선수 박병호 FA 계약은 소극적” 등의 메시지를 번갈아 띄우며 메시지를 전달했다.

팬들은 뜻을 모아 키움증권 본사 앞에 트럭을 보내며 쌓인 불만을 전했다. [사진=야구커뮤니티 엠엘비파크 캡처]

 

팬들의 감정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는 문구들이다. 팀 내 존재감과 그동안의 공로 등은 무시한 채 오로지 현재 가치와 앞으로 지출해야 하는 돈만으로 선수를 판단하는 행태에 팬들은 고개를 저었다.

팀 핵심 선수인 이정후도 무언의 시위를 했다. 자신의 SNS에 박병호, 서건창과 함께 했던 추억이 깃든 사진들을 올리며 아쉬움 가득한 감정을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한솥밥을 먹었던 김하성도 아쉬움을 나타내며 박병호를 향해 “내 마음속의 영구결번 52”라고 적었다.

가장 아쉬운 건 박병호 자신이다. 소속사 리코스포츠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필편지를 남겼는데 히어로즈에 대한 애착을 읽어볼 수 있다. 팬들에게 거듭 감사의 뜻을 전한 박병호는 “유망주로 머물던 시절 히어로즈의 선수로 뛰게 되며 전폭적인 기회를 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며 “미국에서 한국 복귀를 결정했을 때도 히어로즈 구단은 두 팔 벌려 환영해 주셨고 내게는 고향 같은 구단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마지막 아웃 순간까지 소리 높여 응원하여 주신 팬 여러분께 우승을 안겨드리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라며 “히어로즈에서 다시 한번 우승을 도전하고 싶은 열망도 강했으나 주어진 상황에서 프로야구선수 박병호에 대한 가치를 높게 평가해 주신 KT위즈 구단의 감사함도 간과할 수 없었기에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당사자도, 팬들도, 동료들도 누구 하나 원하지 않았던 이별. 여전히 가치를 인정해주는 팀도 있었다. 그럼에도 히어로즈는 박병호를 붙잡지 않았다. 등 돌린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게 아닐까라는 우려가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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