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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가 도운 오늘 [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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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난 세계'가 도운 오늘 [기자의 눈]
  • 나혜인 기자
  • 승인 2024.12.15 13: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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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나혜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됐음을 선포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재적 의원 300명 중 300명이 참석한 가운데 찬성 204표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회 앞에 모인 200만명의 시민이 함성 터트렸고 동시에 '다시 만난 세계'가 재생됐다. 이와 함께 형형색색의 K팝 응원봉이 빛을 뿜었다. 파랑, 빨강, 노랑, 분홍 등의 색이 융합된 모습은 민주주의의 희망이라 칭송받았다. 오늘날 응원봉은 비폭력과 화합의 상징이었다.

◆ 지난 어둠이 오늘의 빛을 만들기를

지금이야 모두가 K팝 응원봉의 '빛'을 긍정하지만, 과거의 K팝 응원 도구는 평화와 거리가 멀었다. 특정 대상을 향한 무언의 칼날이었고, 남에게 내어줄 수 없는 독점욕이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그날의 폭력이 응원 도구 역사에 깊숙이 박혀있다. 그 역사의 중심에 소녀시대가 있다. 소녀시대는 지난 2008년에 참석한 드림콘서트에서 환호도, 불빛도 없는 고요 속의 무대를 경험했다. 소녀시대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동안 '침묵'이라는 팻말이 좌중을 짓눌렀다. 수십만명의 관객이 이들을 폄훼하기 위해 만들어진 루머에 힘을 더하기 위해, 또는 남들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응원봉의 불을 끄고 입을 다물었다. 소녀시대는 2014년, 7년차 아이돌이 된 후에야 그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스스로를 변호하기까지 7년이 걸렸고, 무수한 성과가 필요했다. 그러나 반성하는 이는 없었다. 가해자는 또 한 번 침묵했다.

그 후 10년이 흘렀다.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민중가요로써 국회 앞을 가득 채웠다. 소녀시대 유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응원봉의 불빛을 끄지 않은 팬들에게 따스한 밥 한 끼로 고마움을 대신했고, 서현은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함께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라는 말을 남겼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 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응원봉을 들고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 표결을 하루 앞둔 지난 13일 오후 국회 본관 앞에서 소녀시대 응원봉을 들고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강 작가는 지난 8일 진행된 노벨문학상 수상 강연에서 "과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그는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를 집필하며 질문에 대한 긍정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어 14일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탄핵 가결 결과를 받아들고 한강 작가의 질문을 인용해 "'그렇다'라고 답하고 싶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을 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에는 단 8표가 필요했다. 그리고 최소 12명의 여당 의원이 당론을 거부하고 민주주의에 손을 얹었다. 여당의 표심을 돌리는 데 큰 역할을 한 이번 탄핵 시위는 14일 집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평등하고 민주적인 집회를 위한 모두의 약속'을 내세웠다. 참여자들은 ▲민주주의는 성별, 성적지향, 장애, 연령, 국적 등 서로 다른 사람이 배제되지 않고 안전하고 평등하게 참여할 수 있는 곳에서 가능하다 ▲집회 발언 시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청소년,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배제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특정 대상에 대한 욕설이나 차별, 혐오, 외모 평가 발언 없이도 싸울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는 약속을 맺었다. 다른 누군가를 향해 응원봉의 불을 끄고 침묵의 폭력을 켜선 안 된다는 결속이었다. 이 결속의 공간 선봉에 소녀시대가 있었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 "열심히 공부해왔던 '다시 만난 세계'를 불러봅시다!"라는 외침이 시위 참여자의 가슴을 두드렸다. 청년들은 승리의 기쁨을 떼창했고 기성세대는 안도의 눈물을 노래했다. 

소녀시대. [사진=스포츠Q(큐) DB]
소녀시대. [사진=스포츠Q(큐) DB]

어떤 과거는 '다시 만남'으로써 더 이상 과거가 아니게 된다. 혐오에 맞선 소녀들의 노래가 나 여기 존재하노라 말하는 성소수자들의 목소리와 만나고, 이화여대 재학생들의 동지애와 만나며, 2030 여성들의 선언을 타고 이날의 민주주의 환호와 만나기까지. 세상으로부터 받은 '억까'(억지로 까인다의 준말)의 고통을 공유하는 이들은 끝없이 연결돼 있다. 우리는 이 모든 연결, 이 모든 세계를 눈과 귀와 입으로 확인했다. 물론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이 그날의 결속을 잊을지도 모른다. 혐오의 표현을 내뱉는 이가 하루 아침에 사라지지는 기적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연대의 감각은 남는다. 1980년 5월이 2024년 12월과 만나고, 2008년 6월이 2024년 12월과 만난 순간을 목도하며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희망을 답하고 싶었다. "희망이 있을 거라고 희망하는 것도 희망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나"라고 말한 한강 작가의 등불처럼,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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